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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비주류 21년-외길집념 12년, 지도자 최강희는 그렇게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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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비주류 21년-외길집념 12년, 지도자 최강희는 그렇게 꽃을 피웠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12.02 22: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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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트레이너 입문 뒤 21년만에 명장 대열

[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아시아축구연맹(AFC) 올해의 감독상을 수상한 최강희(55) 전북 현대 감독은 한국 축구계에서는 '비주류'로 통한다. 아무래도 국내 축구계에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선수들은 아직 비주류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은 자신의 지도력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고 한국축구 최고의 명장 반열에 올라섰다. AFC 감독상은 한국 축구에서 비주류일 수밖에 없는 최강희 감독 지도자 인생 21년의 결정판이다.

최강희 감독은 우신고를 졸업한 뒤 대학에 가지 않고 실업팀 한일은행에 입단했다. 이후에는 병역을 위해 육군 충의팀에 들어가서 활약했고 1983년 포항을 통해 프로무대에 입단했다. 1984년 울산 현대 창단멤버로 1988년 서울 올림픽대표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대표를 거쳐 1995년 수원 삼성 트레이너로 지도자에 입문했다.

김호 감독을 보좌하며 수원 코치로서 본격적인 지도자 수업을 받은 최강희 감독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대표팀 코치, 국가대표팀 코치 등을 거쳐 2005년 7월 전북 사령탑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감독 커리어를 쌓아나갔다. 

최강희 감독은 K리그에서 10년 이상 한 팀만을 지휘한 유일한 감독이다. 최강희 감독이 취임한 2005년만 하더라도 전북은 두드러진 팀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명문팀이라고 하기엔 한참 모자랐다. 2000년에 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을 차지하면서 창단 첫 트로피를 수집했지만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기 전까지 최고 성적은 2000년 4위였다.

물론 성적이 좋지 않으니 사령탑도 자주 바뀌었다. 1995년부터 2005년 초까지 AFC 감독상을 받았던 고 차경복 감독을 위시해 최만희, 조윤환 감독 등이 번갈아 맡았고 중간에 남대식, 김형렬 감독대행 과도체제도 있었다. 평균 3~4년 정도만 팀을 이끌다보니 사령탑의 철학이나 전술이 녹아들기엔 시간이 모자랐다.

그러나 전북은 2005년 7월 최강희 감독 체제를 출범시킨 뒤 끝까지 지원하는 뚝심을 보여줬다. 최강희 감독의 전북이 본격적으로 성적이 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우승을 차지하면서부터다. 최강희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지 4년 만에 비로소 전북이 제 궤도로 들어선 셈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최강희 감독이 4년 동안 성적을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일찌감치 경질시킬 수도 있었지만 전북은 그러지 않았다. 전북은 역사가 오래 되지 않은 팀의 확실한 색깔을 원했다. 

최강희 감독은 '닥공(닥치고 공격)'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축구 철학,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춘 지도 철학으로 녹색군단의 체질을 탈바꿈시키는데 4년이면 충분했다. 4년의 기다림 속에 전북은 어느새 K리그 클래식의 최강 팀으로 우뚝 섰고 최강희 감독 개인적으로도 AFC 감독상으로 결실을 맺었다.

최강희 감독은 AFC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정상에 선 지도자가 됐다. 트레이너 입문 후 21년, 그리고 전북에서 외길 12년은 비주류의 유쾌한 도전 결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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