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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Q] 비♥김태희 결혼식, 북촌의 고즈넉한 성당을 택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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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Q] 비♥김태희 결혼식, 북촌의 고즈넉한 성당을 택한 이유는?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7.01.20 0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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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오소영 기자] 역사적으로 경복궁 서쪽 지역을 '서촌', 남산 기슭을 '남촌'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은 '북촌'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청계천과 종각의 윗동네라는 이름에서 '북촌'이라고 불리어진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조선시대에 왕족이나 고위관직에 있던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였던 곳이다.

비와 김태희는 백년가약의 장소로 가회동성당을 택했을까? 전통적으로 유서 깊은 '북촌'에 위치한 성당이라는 점도 선택의 한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1920년대까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더 이곳은 1930년대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정되고 도시구조가 근대적으로 변형되면서 중소규모의 한옥들이 대거 건설되었다. 현재 북촌의 한옥마을은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19일 오후 서울 북촌에 위치한 가회동성당에서 백년가약을 맺은 정지훈(비)와 김태희.   [사진= 루아엔터테인먼트 · 레인컴퍼니 제공]

19일 오후, 비와 김태희가 서울 종로구 가회동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가회동성당은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성당으로, 한옥과 양옥이 혼합돼 있는 건물이다. 근처에는 국립현대미술관, 풍문여고, 안국역, 창덕궁 등이 위치해 있다. 

가회동성당은 비와 김태희 외에도, 많은 예비신랑 신부가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는 북촌의 풍경과 성당 자체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있기 때문으로, 성당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조용한 분위기에서 결혼식을 진행할 수 있다.

특히 가회동성당은 건축 당시, 건물 내부의 빛의 설계에 특별히 신경을 썼다. 가회동성당 홈페이지에 적힌 소개에 따르면, 스페인으로 건축 연수를 다녀온 신부가 현지에서 감명깊게 봤던 건물에 대한 기억을 토대로 가회동성당 내부 창문과 빛에 대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후문이다.  

 [사진= 루아엔터테인먼트 · 레인컴퍼니 제공]

김태희가 평소 다니는 성동구 옥수동성당이 아닌 종로구의 가회동성당을 택한 것에는 조용히 결혼식을 진행하고자 하는 의도가 읽힌다. 또한 평소 가회동성당에서는 금, 토요일, 국경일에 혼배미사 예약이 가능하지만 비와 김태희의 결혼식은 평일인 목요일에 진행돼, 주변의 관심을 끌지 않으려는 스타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비와 김태희는 결혼식 날짜와 시간을 알리지 않는 등, 결혼식을 최대한 조용하게 진행하려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대중의 호기심이 뜨거운 만큼, 김태희와 비의 결혼식을 통해 해당 성당에 대한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도 보인다. 현재 가회동성당 홈페이지를 보면, 2017년 혼배미사 일정 중 주말인 토요일 일정은 이미 예약 완료돼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이번 결혼식 이후에도 해당 성당을 찾는 예비부부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신부 김태희가 결혼을 앞두고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한 손편지.  [사진= 루아엔터테인먼트 · 레인컴퍼니 제공]

김태희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평소 주보에 글을 기고하고 성경공부 모임에 참석하는 등 신앙생활에 열심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회동성당은 그 건물 자체로도 천주교인들에게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북촌은 천주교인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천주교인들이 박해받던 조선시대, 주문모 신부가 조선에 숨어들어와 첫 미사를 집전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가회동성당은 이런 북촌에 세워진 곳이다. 

가회동성당은 역사가 긴 성당이기도 하다. 가회동성당은 1945년 8월, 광복을 맞은 후 명동성당 회장단이 보다 활발한 복음전파를 위해 주변지역에 성당을 지으며 시작됐다. 그러나 건물은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됐고, 종전 이후 1952년 성당 신축허가를 받아 다시 짓기 시작했다. 다시 준공된 가회동성당은 1954년 축성미사를 드리며 본격적인 선교활동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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