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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웠지만 축복' 차두리, 마지막에 아버지 차붐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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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웠지만 축복' 차두리, 마지막에 아버지 차붐을 말하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3.31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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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은퇴식에서 아버지와 상암벌 포옹 "스승이자 감독 역할까지, 나는 행운아"

[상암=스포츠Q 박상현 기자] 또 한명의 '대한민국 축구 레전드' 차두리(35·FC 서울)가 대표팀 유니폼을 벗었다. 아버지 '차붐' 차범근(62) 전 수원 감독의 후광에 가린 아들이자 아버지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라는 평가를 듣기도 했지만 '차미네이터'라는 별명으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에서 영원히 물러났다. 그래도 차두리는 아버지의 벽을 넘지 못한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이 있었다.

차두리는 3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국가대표 친선경기 뉴질랜드전에 오른쪽 측면 풀백으로 선발 출전, 42분을 뛴 뒤 김창수(30·가시와 레이솔)와 교체돼 물러났다. 이후 하프타임에서 진행한 은퇴식을 통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자신을 연호하는 3만여 팬 앞에서 은퇴경기와 은퇴식을 치른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선수였다. 아버지 차범근 감독도 누려보지 못한 영광이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 하프타임에 가진 은퇴식에서 아버지 차범근 감독으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뜨겁게 포옹하고 있다.

이날 경기는 이재성(23·전북 현대)의 후반 42분 결승골로 한국이 1-0으로 이겼다. 젊은 패기와 체격 조건을 앞세운 뉴질랜드는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의 말대로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결정적인 실점 위기도 두차례나 있었다. 그래도 후배들이 열심히 뛰어줘 자신의 은퇴 경기가 승리로 마감된 것에 대해 차두리의 얼굴은 미소가 가득했다.

차두리는 경기 뒤 슈틸리케 감독에 이어 은퇴 인터뷰를 위해 기자회견장에 들어왔다. 차두리는 "날씨가 좋지 않은데도 너무나 많은 팬들이 와주셔서 마지막 자리를 축하해주고 기뻐해줘 감사하다"며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었고 기쁜 일과 실망스러운 일도 있었다. 이제 이런 것도 모두 끝이다. 모든 분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부터 전했다.

또 차두리는 "나는 복받은 사람이다. 그렇기에 항상 감사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며 "내가 한 것 이상으로 너무나 큰 사랑을 받아 감사하면서도 부끄럽고 미안하다. 내가 행복한 축구선수라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 넘고 싶었던 아버지의 벽, 그래도 아버지가 있어 행복했다

역시 첫번째 화두는 아버지였다. 차범근 감독은 하프타임에 진행된 은퇴식에서 꽃다발을 장남 차두리에게 전달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진 그는 한동안 아버지의 왼쪽 어깨에 얼굴을 파묻고 떨어질줄 몰랐다.

차두리는 "아버지가 그라운드에 나왔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항상 아버지를 보고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을 해왔던 것 같다. 아버지보다 잘하고 싶었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왔다"며 "그러나 어느 순간 현실의 벽을 느꼈다. 아버지의 큰 아성에 도전했는데 실패한 것에 대한 자책감,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고 말했다.

이어 "아버지가 좀 밉기도 했다. 너무 축구를 잘하는 아버지를 뒀기 때문에 속상함이 있었다. 아무리 잘해도 근처에 가지도 못하니까"라며 "그래도 가장 존경하고 사랑하며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 아버지다. 그런 아버지를 둔 것은 가장 큰 선물이고 축복이었다"고 심정을 전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 하프타임에 가진 은퇴식에서 눈물이 흐르자 손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

또 차두리는 "아버지는 모든 것을 갖춘 분이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고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했다"며 "그래도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아버지를 둔 것은 분명 행운이다. 어떻게 경기를 하라고 지시를 내려주는 감독이자 내가 힘들 때마다 보듬어주고 챙겨주는 아버지이기도 했고 스승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차두리는 한일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에 대한 감사도 함께 전했다. 차두리는 "대표팀 경험은커녕 청소년 대표팀에서 뛴 적이 없는 대학생인 나를 월드컵 대표팀에 합류시킨다는 것은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스피드와 힘 하나만을 보고 발탁해서 월드컵으로 데려가준 분이다. 히딩크 감독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고 말했다.

◆ 아시안컵 우즈벡과 8강전, 내 인생의 최고 경기

차두리는 자신의 76차례 A매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를 지난 1월 우즈베키스탄과 아시안컵 8강전을 들었다. 수많은 경기가 있었지만 우즈베키스탄전을 꼽은 것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차두리는 "60m 드리블을 해서 손흥민(23·바이어 레버쿠젠)에게 골을 어시스트하는 강인한 인상을 남겨서이기도 하지만 경기를 하면서 내가 고참이고 대표팀에 필요한 선수라는 것을 느끼게 해준 경기"라며 "아시안컵 대표팀이 소집된 뒤 후배들에게 '개인 욕심을 버리고 팀을 이기게 하는데 초점을 맞추자, 경기 출전 여부에 관계없이 팀 승리를 위해 희생하자, 나처럼 나이가 든 선수부터 솔선수범하겠다'고 얘기했다. 우즈베키스탄전이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실천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고 설명했다.

차두리는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을 선발이 아닌 벤치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차두리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든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교체로 들어가서 공격 포인트를 올려 한국을 4강으로 이끄는데 크게 보탬이 됐다. 후배들에게 한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었다.

또 차두리가 우즈베키스탄전을 꼽은 이유는 간절히 이기고 싶었던 경기였기 때문이다. 만약 우즈베키스탄과 경기에서 졌다면 자신의 A매치는 거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만큼 승리가 간절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 직전 환하게 웃고 있다.

차두리는 "너무나 이기고 싶은데 (손)흥민이가 상대 왼쪽 측면 수비수에 너무 괴롭힘을 당해 힘들어했다. 감독 전술에 대해 선수가 관여하는 것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었는데 너무나 이기고 싶어 이근호(30·엘 자이시)를 전방에서 오른쪽 측면으로 내리고 손흥민을 전방으로 올리자고 슈틸리케 감독에게 건의했다"며 "감독도 흔쾌히 받아들였고 결과적으로 흥민이가 2골을 넣었다. 경기가 끝난 뒤에 생각해보니 한국 선수들이 감독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결국 이런 일은 고참이 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후배들에게 한 말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었고 너무나 이기고 싶은 마음에 고참으로서 총대를 메고 감독에게 전술 변화에 대한 건의를 했으며 공격포인트까지 올렸다. 차두리에게 강한 인상이 남는 경기일 수밖에 없다.

◆ 앞으로 선수들도 책임감 갖고 대표팀서 뛰어야

차두리는 손흥민이 페널티킥을 차는 모습에 대해 이상하게 실패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단다. 그는 "느낌상 흥민이가 못넣을 것 같더라"며 웃은 뒤 "경기를 이기는 것이 중요했고 끝까지 진지함을 유지하고 싶었다. 나보고 차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고 기성용(26·스완지 시티)이 찼으면 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후배들이 이기고자 노력헀고 이재성이라는 신예가 결승골을 넣으며 띠동갑 선배에게 은퇴 선물을 했다. 차두리는 "어린 선수가 골을 넣은 것은 대표팀에 상당히 긍정적"이라며 "어린 K리거가 활약을 해줬다는 것은 앞으로 다른 K리거들에게도 큰 희망을 줄 것 같다"고 높이 평가했다.

차두리는 후배들에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닌 '정말로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명언을 남겼다.

차두리는 "어렸을 때 경기를 하고 오면 아버지에게 열심히 했다고 하면 칭찬을 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정말로 잘해야만 했다"며 "대표팀 선수라면 이기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내고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 기본 바탕으로 간결하고 정교하게 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다. 기술이 좋은 후배들이 많지만 열심히 한다는 기준을 세계 수준에 맞춰서 많이 뛰고 투쟁하고 상대를 괴롭혀서 잘하는 경기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오른쪽)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전반 42분 교체돼 나가면서 손흥민과 포옹을 하고 있다.

또 그는 "대표팀 선수라는 것은 정말로 복받은 것이며 하늘에서 점지해준 것"이라며 "대표팀이라는 곳은 수많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고 한번 들어왔어도 금방 밀려날 수도 있는 곳이다. 한번 들어왔을 때 뭔가를 보여줘 오래 남겠다는 욕심을 갖고 와야 한다. 선수 개개인이 자신의 책임을 느껴가며 스스로 기량을 발전시켜야 한국 축구가 발전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차두리는 당장 소속팀 FC 서울의 3연패부터 끊어야 한다. "앞으로 죽어라 뛰어야겠다"는 농담 섞인 각오도 잊지 않았다. 또 올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면 독일로 건너가 지도자 자격증을 따는 것이 목표다.

차두리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해 "아직도 3-5로 지고 있는 경기인 것 같다. 하지만 골대를 두번 맞춰 아쉬움이 남는 경기"라며 "대표팀과 소속팀 서울에서 타이틀을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모두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아시안컵 준우승에 그쳤다. 마지막 단계까지 갔지만 결과적으로 빈 손이기 때문에 3-5라고 말하고 싶다"고 끝을 맺었다. 어쩌면 그는 대표팀에서 이뤄내지 못했던 우승의 한을 소속팀 서울에서 풀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올시즌 K리그 클래식 정규리그와 대한축구협회(FA)컵, AFC 챔피언스리그 등 3개의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다.

취재진들로부터 많은 질문을 받은 차두리는 박수를 받으며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차두리는 "이렇게 많은 질문을 받은 적이 없어 힘들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대표팀 선수 차두리는 더이상 볼 수 없지만 그의 인생 2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상암=스포츠Q 이상민 기자] 차두리가 31일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뉴질랜드와 평가전에서 전반 42분 교체되면서 박수를 치며 그라운드를 빠져나가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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