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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명이 이룬 한국 여자월드컵 16강, 그것만으로 기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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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명이 이룬 한국 여자월드컵 16강, 그것만으로 기적이었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6.22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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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분석] 한국보다 세계랭킹 앞선 브라질·스페인·프랑스와 당당히 맞서…경기운영능력·경험 등은 숙제

[스포츠Q 박상현 기자] 한국 여자축구의 두려움없는 도전은 16강에서 끝났다.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원하긴 했지만 16강만으로도 기적이고 대단한 선전이었다.

윤덕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축구대표팀은 22일(한국시간) 캐나다 몬트리올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프랑스와 2015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16강전에서 0-3으로 완패하는 것으로 두 번째 월드컵 도전을 마쳤다.

여자대표팀은 '닭치고 8강'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프랑스와 당당하게 맞섰지만 경기 운영에서 미흡함을 드러내면서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FIFA 랭킹 18위의 한국이 세계 3위 프랑스에 진 것은 현실이었다.

무엇보다도 이 성과가 1700명이 이뤘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지난해 대한축구협회의 등록 현황 결과에 따르면 여자축구선수는 1705명이었다. 이 숫자는 성인만의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부터 모두 따진 것이다.

엄밀히 따지자면 여자 대표팀 선수들이 모두 실업팀 또는 해외에 진출한 성인이라는 점에서 실업팀 선수 213명이 이룬 성과라고 볼 수 있다.

23명의 대표팀 선수 가운데 해외에 진출한 지소연(24·첼시 레이디스)과 박은선(29·로시얀카) 등을 뺀다면 213명 가운데 21명을 뽑은 것이다. WK리그에 소속된 선수 10명 가운데 대표팀 선수가 1명 나왔다는 계산이다. 이런 비율로 구성된 대표팀이 세계 16강에 올랐다는 것은 기적 중의 기적이다.

◆ 이제 막 '아시아 우물'에서 벗어난 호랑이, 세계 경쟁력을 키워라

한국 여자축구는 이제 막 '아시아 우물'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2003년 미국 여자월드컵에 첫 출전하긴 했지만 세계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 여자축구가 미국이나 캐나다 등 세계 강호들과 경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각종 친선 대회나 평가전을 통해 A매치를 치러보긴 했다. 그러나 한국의 주된 A매치 상대는 일본, 중국, 북한 등 아시아권 국가였다. 현재 한국 대표팀 선수들의 A매치 경력도 월드컵 예선전인 여자 아시안컵이나 올림픽 예선전, 동아시안컵 등이 대다수다. 아직 한국 여자축구는 올림픽에도 출전해본 적이 없다.

뒤떨어지는 세계 경쟁력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도 잘 드러났다. A매치 출전 경험이 100경기가 넘는 선수 7명을 보유한 프랑스의 노련한 경기 운영에 그대로 말렸고 완패했다.

또 적절하게 파울로 끊는데도 미숙했다. 강팀과 맞서려면 위험지역이 아닌 곳에서 미리 파울로 끊으면서 상대의 공격 속도를 늦추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번 월드컵 4경기를 통해 단 한 번도 상대팀보다 파울 숫자가 많은 적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파울을 최소화하며 페어플레이를 펼쳤다는 뜻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대 몸싸움을 주저하면서 미리미리 위기를 끊어내지 못했다는 의미다.

브라질전에서 한국의 파울은 고작 3개에 그쳤지만 브라질은 9개나 됐고 코스타리카전(한국 10, 코스타리카 12), 스페인전(한국 9, 스페인 13)도 마찬가지였다. 프랑스과 16강전은 더욱 극심해 한국은 8개의 파울에 그친 반면 프랑스는 17개나 됐다. 특히 전반에는 파울 숫자가 3-9로 프랑스가 6개나 더 많았다. 그만큼 한국은 수비할 때 파울을 하는데 인색했고 공격을 받을 때는 상대의 파울에 흐름이 끊겼다.

파울을 하는 것도 영리하지 못했다. 뒤늦게 파울을 끊다보니 위험한 것이 많았고 옐로카드도 늘어났다. 파울 숫자는 4경기를 통틀어 30개였지만 옐로카드는 7장이나 됐다. 파울 4개에 옐로카드가 하나꼴이다. 코스타리카전에서는 파울 숫자가 더 적었지만 옐로카드는 3장이나 나왔다. 코스타리카는 당시 단 1개의 옐로카드도 받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

◆ 한국 선수들의 재조명, 세계 진출 기회 있으면 도전하라

한국 선수 최초로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했던 차연희(29·이천 대교)는 이번 기회에 세계 팀들의 러브콜이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라고 권한다.

차연희는 "아직 여자축구는 남자처럼 에이전트나 스카우트 제도가 확실히 정립되어 있지 않아 세계 대회나 A매치를 통해 선수들이 발굴되는 경우가 많다"며 "월드컵이라는 큰 무대는 한국 선수가 해외로 진출하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다. 지소연도 연령별 대회와 A매치를 통해 해외로 나간 케이스"라고 말했다.

이번 대표팀에는 해외 진출을 바라는 선수들이 적지 않다. '금발의 캡틴' 조소현(28·현대제철)이 가장 대표적이고 아직 확실하게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상당수가 기회가 되면 해외로 진출하고 싶어한다.

해외 진출은 한국 선수들의 세계 경쟁력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아시아가 아닌 유럽이나 북미 선수들과 여러 차례 맞부딪히고 적응력을 키우려면 역시 해외 리그 진출이 답이다.

또 선수들의 해외 진출은 초중고 선수들이 꿈을 갖는 동기가 된다. 자신도 지소연 등 현재 대표팀 선수들처럼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갖게 함으로써 학생 선수들의 저변을 확대하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여기에 해외에 나간 선수만큼 WK리그 팀들도 선수들을 더 뽑아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초중고 선수들이 늘어날 수 있다.

◆ 황무지에서 피어난 16강 꽃봉우리, 더욱 활짝 피우려면

한국 여자축구의 인기와 저변을 생각한다면 월드컵 16강은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피어난 꽃봉우리와 다름없다. 전가을(27·인천 현대제철)이 월드컵 출정식에서 한국에서 여자 축구선수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인지를 밝히며 눈물을 흘린 것만으로도 여자축구의 환경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알 수 있다.

프랑스와 축구 인구만도 큰 차이가 난다. 한국은 1700명 수준인 반면 프랑스는 8만4000명으로 한국의 50배나 된다. 프랑스 여자축구리그는 1부 12개팀, 2부 36개팀으로 모두 48개팀인데 비해 한국은 초중고등학교부터 대학, 실업팀까지 모두 합쳐봤자 78개팀에 불과하다. 저변만 놓고 보면 애초부터 게임이 안되는 것이었다.

인기가 없고 환경이 척박한 것은 사실 축구만의 문제는 아니다. 여성 스포츠에서는 축구뿐 아니라 농구와 배구, 핸드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축구가 더욱 외로운 것은 1970, 80년대 사랑을 받았던 여자농구, 여자배구와 세계 정상급으로 올림픽 때만 되면 그래도 관심이 모아지는 여자핸드볼과 달리 여자축구는 단 한번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2010년 FIFA 20세 이하 월드컵 동메달과 17세 이하 월드컵 우승을 거둬 반짝 관심을 모으기도 했지만 이내 사그러들었다. 지금 어느 정도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도 지소연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한국 여자축구의 저변이 확대되기 위해서는 피라미드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선수 현황을 보면 초등학교 422명, 중학교 494명, 고등학교 367명, 대학교 209명, 실업 213명으로 하부구조가 매우 취약하다. 어린 선수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키우려면 학교뿐 아니라 유소녀 클럽의 숫자도 함께 늘려 유망주들의 숫자를 적극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대한축구협회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도 필요하다. 남자뿐 아니라 여자에서도 한국 축구의 전반적인 수술과 개혁이 있지 않고서는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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