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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아가씨' 박찬욱 감독 "한국과 미국에서 한 편씩 번갈아 연출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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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Q] '아가씨' 박찬욱 감독 "한국과 미국에서 한 편씩 번갈아 연출하고 싶어"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7.1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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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박찬욱 감독의 신작 '아가씨'는 매우 적나라한 영화다. 동성애에 대한 영화적 표현은 물론 사회적 인식까지도 금기(禁忌)에 가까운 한국에서 '아가씨'는 과감하게 김민희와 김태리, 두 여주인공의 적나라한 동성애 장면을 넣어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과연 '아가씨'가 단지 동성애 장면으로만 기억될 그런 영화일까?

[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현존하는 한국영화계의 거장을 꼽으라고 하면 누구나 100편이 넘는 연출작을 남긴 임권택 감독을 꼽겠지만, 한국 영화감독 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감독이 누구냐고 하면 그 주인공은 박찬욱 감독이다. 2004년 칸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한 '올드보이'는 세계적으로 컬트적인 인기를 모으며 박찬욱 감독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고, 결국 2013년에는 '스토커'로 할리우드에서 직접 영화를 연출하는데 성공했다.

'스토커' 이후 3년, 그리고 2009년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연출한 장편영화인 '박쥐' 이후 7년 만에 다시 돌아온 박찬욱 감독은 이번에는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속고 속이는 이야기의 향연 위에 남다른 미장센과 동성애 장면까지 얹어낸 영화 '아가씨'를 선보였다. 그리고 '아가씨'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답게 표면에 드러난 것보다 속에 감춰진 것들이 훨씬 많은 영화였다.

▲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 [사진 = 퍼스트룩 제공]

◆ "'아가씨'는 그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잘 알려진 것처럼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박찬욱 감독이 '핑거스미스'의 영화화를 계획하게 된 것은 '올드보이'의 프로듀서인 임승용의 추천이었다.

임승용은 박찬욱 감독에게 미네기시 노부아키의 만화 '올드보이'를 추천해 영화화를 이끌어냈던 프로듀서로, 이번에도 아내의 추천으로 '핑거스미스'를 박찬욱 감독에게 권했다. 박찬욱 감독은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대담하게 동성애를 그려내는 '핑거스미스'의 이야기에 반해서 소설을 끝까지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이미 영화화를 결심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당시 준비하던 '스토커'의 연출을 마친 후 곧바로 '핑거스미스'의 영화화에 착수한다.

하지만 사라 워터스의 소설 '핑거스미스'와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일단 박찬욱 감독은 영국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핑거스미스'를 일제강점기의 조선으로 바꾸고, '출생의 비밀'이 주된 반전인 '핑거스미스'의 반전 대신 새로운 이야기를 넣는다.

"'올드보이'도 원작과는 결말이 달랐죠. 저는 원작이 얼마나 걸작이냐에 상관없이 매체가 달라지면 이야기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원작을 읽다 보면 읽으면서 드는 기대나 예상이 있거든요. 원작의 전개와는 상관없이 내가 별개로 발전시킨 그런 생각들을 영화로 옮기는 거죠."

'아가씨'의 배경이 일제강점기라는 것도 논란의 대상이었다. 대개 한국영화에서 일제강점기를 그린 영화들에는 항일(抗日)이라는 코드가 들어가기 마련이지만, '아가씨'에는 그런 항일코드나 국수주의적인 측면이 없다는 것. 그래서 이에 대해 영화에서 미장센이 철저하기로 유명한 박찬욱 감독이 단지 원작의 빅토리아 시대에 비견될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내기 위한 영화적 장치로 일제강점기를 택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코우즈키(조진웅 분)의 캐릭터가 원작에 비해 쓸데없이 커졌다는 말도 있던데,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영화에서 단지 배경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것으로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코우즈키'라는 인물이 필요했어요. 그 시대 골수 친일파의 내면을 극단적으로 묘사하고 싶었죠."

"난 '아가씨'도 그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그린 영화라고 생각해요. 히데코(김민희 분)와 숙희(김태리 분)가 자유를 찾아서 떠나잖아요. 이건 넓은 의미에서 보면 독립운동이에요. 히데코가 골수 친일파인 코우즈키에게 당해온 억압과 학대 역시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와 별개는 아닌 거죠."

▲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 [사진 = 퍼스트룩 제공]

◆ 파격적인 동성애 묘사? "은밀한 것도, 적나라한 것도 모두 좋아요"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는 영화 개봉 전부터 적나라한 성적 표현이 들어갈 것으로 기대를 모았고, 뚜껑을 열자 예상대로 '가위치기'로 불리는 김민희와 김태리의 동성애 장면을 비롯해 상당한 수위의 성적 묘사들이 등장했다.

그런데 '아가씨'에 등장하는 성적 묘사들은 사실 생각만큼 적나라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전라(全裸) 동성애 장면이나 코우즈키의 서재에서 벌어지는 '사드풍 소설'의 낭독회 현장 등 표현 수위가 결코 낮지는 않지만, 박찬욱 감독은 이 장면들을 관객의 눈요기를 위한 '여흥'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을 실어내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성애 장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는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자유예요. 하지만 제가 관객이라면 그 장면에 대해 다른 감정없이 순수하게 쾌락을 즐기는, 만족스럽고 유쾌한 순수한 욕망의 추구라고 볼 것 같아요. 동성애 장면을 통해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고귀한 것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 김민희와 김태리 두 여자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낭독회 장면에서 히데코는 코우즈키에게 어린시절부터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사육된 존재로 등장해요. 하지만 사실 낭독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코우즈키가 아니라 히데코에요. 히데코는 처음 낭독회에 참석한 백작(하정우 분)을 보며 '신참이 왔구나'하며 자신이 우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죠. 그러면서 마리아 칼라스와 같은 디바처럼 무대에서 자신을 음흉한 눈으로 지켜보는 수컷들을 들었다놨다 해요. 이를 통해 히데코라는 사람이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만 주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특히 정전이 됐을 때 히데코는 숙희와의 관계를 상상하며 암송을 하는데, 숙희와 히데코 둘 다 남성들에게 순순히 이용당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박찬욱 감독의 영화는 해외에서는 '올드보이'의 장도리 격투신처럼 독특한 폭력미학이 더욱 잘 알려졌지만, 사실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만만치않은 성적 코드들이 들어가 있었다. '삼인조'에서 정선경과 김민종의 베드신은 수녀복을 입은 모습으로 과감하게 금기에 도전했고, '올드보이'에서는 아버지와 딸의 근친을 암시했다. 또한 '박쥐'에서 송강호의 성기가 노출된 것처럼 강렬한 성적 이미지를 전혀 섹슈얼하지 않게 다루기도 한다.

"'아가씨'에서 히데코가 숙희의 이빨을 갈아준다던가, 서로 옷을 벗기고 입히는 놀이를 하는 장면은 은밀한 감정이에요. 꼭 성적인 행위를 하지 않더라도 이미 그런 감정이 감춰져 있는 것이죠. 전 영화에서 성적인 표현을 쓸 때 노골적인 표현과 은밀한 표현을 둘 다 좋아해요. '스토커'에서도 자위행위 장면이 적나라하게 나오잖아요. 성적인 표현은 영화의 이야기와 필요에 따라 과감하게도, 은밀하게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죠."

▲ 영화 '아가씨' 스틸 이미지

'아가씨'에서 인물들의 캐릭터나 파격적인 성행위 묘사도 중요하지만, 진짜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저택의 미장센도 놓칠 수 없는 부분이다. '올드보이'에 등장하는 유지태의 펜트하우스처럼 세트를 만들 때 치밀한 계산에 따라 의도를 부여해 주는 박찬욱 감독은 '아가씨'에서도 일본식 다다미방과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고풍스러운 저택, 그리고 조선의 한옥까지 잡다하게 뒤섞인 저택을 만들어내며 김민희와 김태리, 하정우와 조진웅에 이어 영화의 다섯 번째 주인공으로 만들어낸다.

"영화에 등장하는 저택은 영국식 건축과 일본식 건축이 어떤 조화나 화학적 결합없이 단순무식하게 붙어있어요. 친일파인 코우즈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죠. 이것은 진짜 일본도 아니고 말 그대로 '짝퉁' 일본이거든요.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은 일본을 통해서 서구의 문물을 강제로 받아들이면서 조선의 것들은 열등한 것으로 취급당하고, 서구문물이 우월한 것으로 받아들여져요. 영화에서 하인들이 사는 숙소가 조선식 한옥으로 그려진 것도 이런 이유에요."

"낭독회가 펼쳐지는 서재도 일본식 다다미방과 유럽식 서재의 이미지가 결합되어 있죠. 코우즈키도 평소에는 서구적인 연미복을 입다가, 다다미방에 들어가면 연미복을 벗고 일본 옷을 입어요. 사사키 부인(김해숙 분)이나 하녀들도 저택의 양관과 화관을 넘나들 때마다 신발을 신었다 벗었다 하고요. 이건 상당히 우스꽝스러운 풍경이에요. 서재의 다다미도 일부를 도려내 분재도 넣고 물도 넣고 하는 것이 일본식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겠다는 코우즈키의 야심이고요. 그런데 다다미 한 장을 들어내면 지하에서는 끔찍하고 역겨운 일이 벌어지죠. 이런 저택의 복잡한 모습을 통해 '코우즈키'로 대표되는 진짜 일본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친일파의 변태성이나 식민지 근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 [사진 = 퍼스트룩 제공]

◆ '아가씨' 이후 차기작은? "한국과 미국에서 한 편씩 번갈아 연출하고 싶어"

박찬욱 감독은 2009년 '박쥐'를 연출한 이후 계속 할리우드 진출을 준비해 왔고, 결국 2013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할리우드에 혜성같이 등장한 신예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왓치맨'의 매튜 굿, 그리고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대배우 니콜 키드먼 등 화려한 캐스팅으로 할리우드에서 '스토커'를 연출했다.

그리고 그 사이 박찬욱 감독은 한국에서 '아가씨'까지 7년 동안 장편영화 연출을 하지 않았지만 동생인 박찬경 감독과 함께 'PARKing CHANce'를 만들어 단편 '파란만장'과 '청출어람', 다큐멘터리 '고진감래' 등을 연출하기도 했다.

'아가씨'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의 다음 시선은 이미 할리우드를 향해 있었다. 박찬욱 감독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게 비원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레버넌트'의 연출자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고, 미국인들의 역사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서부영화를 연출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확정된 영화 없이 계속 두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을 타진 중이다.

"개인적인 희망이라면 한국과 미국에서 한 편씩 번갈아서 연출을 하고 싶어요. 그러니 '아가씨' 이후 지금 한 세 편 정도를 두고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아직 투자 확정이 된 작품이 없어서 결정됐다고 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에요. 만약 지금 이야기가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들이 다 투자가 안 된다면 한국에서 영화를 해야겠죠. 그런데 지금은 준비된 각본이 없어서 처음부터 새로 써야되서 그렇게 된다면 다음 영화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죠."

▲ 영화 '아가씨' 박찬욱 감독 [사진 = 퍼스트룩 제공]

"미국에서 한 때 서부영화를 준비하기도 했어요. 서부영화를 오랜 역사가 없는 미국인들의 역사 판타지라고 하고, 그래서 동양인이 서부영화를 준비한다고 하면 의아해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미 서부영화는 이탈리아 감독들이 '마카로니 웨스턴'으로 다뤄온 장르이기도 하고, 저도 미국은 이제 하나의 나라라기보다는 전 지구에 영향을 주는 큰 제국인만큼, 미국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들여다보는 것이 굳이 미국인들의 특권도 아니고 미국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취재후기]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는 언제나 박찬욱만의 독특한 B급 감성이 묻어난다. 이 이야기를 하자 박찬욱 감독은 웃으며 할리우드에서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 등을 연출한 대만 출신의 이안 감독과 만난 이야기를 했다. 박찬욱 감독은 "이안 감독을 만나서 당신 영화 중 '아이스 스톰'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더니 '역시 정의는 살아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제가 이런 상황에서 써먹는 말입니다"라는 답을 했다. 역시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B급 감성이란 '정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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