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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화재 23년만·크랭크업 4년만, 값진 기다림 '소방관'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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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제동 화재 23년만·크랭크업 4년만, 값진 기다림 '소방관'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11.26 15: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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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으로 2년, 주연 배우 곽도원의 음주 운전 사건으로 2년. 크랭크업 후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미디어 시장은 급변해 4년을 영겁의 세월로 만들었다. 하지만 '소방관'은 세월을 이겨냈다. 느리게 흘러가는 곳 하나, 모난 곳 하나 없었다. 연기가 자욱한 화재 현장은 극중 인물과 함께 얕은 숨을 내뱉게 했고, 뜨거운 불길을 피해 생존자를 찾는 걸음은 긴박감에 얕게 내뱉던 숨까지 멈추게 했다. 실화 기반의 전개는 쉽게 가시지 않는 먹먹함을 남기며 '이야기의 힘'이 무엇인지 되새겼다. 기다림은 길었지만, 기다릴 가치를 충분히 지닌 곽경택 감독의 '소방관'이다.

'소방관'은 2001년 3월 4일 발생한 '홍제동 화재 사건'을 재구성한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다세대주택에서 발생한 방화로 화재 진압과 인명 구조에 나선 소방관 6명이 현장에서 사망하고 3명이 중상을 입은 대형 참사다.

영화 ‘소방관’ 스틸컷.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소방관’ 스틸컷.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당시 소방차 20여 대와 소방관 46명이 출동했지만 좁은 골목에 불법 주·정차된 차량들로 소방차가 진입하지 못해 화재 진압이 늦어졌고, 구조를 진행하던 중 2층 주택 전체가 무너지면서 소방관 9명이 매몰됐다. 소방관들은 인명 구조 5분여 만에 주민을 모두 대피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아직 아들이 집에 있다는 집주인의 말에 재수색에 나선 상황이었다. 이후 진상 조사를 통해 집주인의 아들이 방화를 저지르고 도망친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소방 영웅들의 안타까운 참사인 동시에 소방관들의 열악한 업무 환경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사건 이후 소방관들의 근무 형태가 24시간 맞교대 격일 근무에서 3교대로 변경됐고 화재 현장 진입 때 착용했던 방수복은 방화복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소방관의 국가공무원직 인정은 사건 발생 18년 뒤인 2019년에 이르러서야 이뤄졌다. 소방차 진입을 막은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소방기본법 역시 2018년 뒤늦게 개정됐다. 2017년 충청북도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사고로 29명이 사망하고 40여 명이 부상을 입은 뒤였다.

영화 ‘소방관’ 스틸컷.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소방관’ 스틸컷.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소방관'은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짚는다. 진섭(곽도원 분)의 호소로 소방관이 겪는 어려움을 털어놓고, 온몸에 진하게 남은 화상 자국으로 화염을 막지 못하는 방수복, 화재 현장에서 무용지물인 목장갑 등 믿기 힘든 처우를 보여준다. 소방차의 물길을 막는 불법 주·정차 문제는 무거운 호스를 둘러멘 소방관들의 뜀박질로 접근한다. 이를 통해 막연함은 걷어내고 뚜렷한 문제의식을 남긴다.

무엇보다 소방관에게 '정의감'을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이 기존 영화와 다른 결을 낳는다. 극중 등장하는 소방관은 대의를 위해 희생하는 히어로가 아니다. 직업인으로서의 사명감, 나의 가족과 이웃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일상 영위의 꿈을 지닌 소시민이다. 뜨거운 화마를 이겨내는 우주의 기운은 없지만, 위험에 빠진 이들과 함께 불길을 헤치고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고픈 소박한 마음이 있다. 그 마음이 이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이와 더불어 주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이준혁, 장영남 등 베테랑 배우들이 개성을 뒤로하고 건조하리만큼 무던하게 보여주는 연기는 추모와 기억의 메시지를 가슴 깊이 새기고 강한 여운을 남긴다.

영화 ‘소방관’ 스틸컷.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 ‘소방관’ 스틸컷. [사진=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영화의 유일한 걸림돌은 곽도원이다. 소방관의 숭고한 정신을 담은 곽도원의 목소리는 범법을 저지른 실체 탓에 양두구육으로 다가온다. 곽경택 감독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곽도원의 분량을 빼기 위한 편집은 하지 않았다"고 말했으나 이는 "하지 '못'했다"에 가까운 답이다. 곽도원이 연기한 진섭은 존재 자체가 영화의 메시지다. 진섭이 사라지면 '소방관'의 메시지도 사라진다. 곽도원이 주연 배우로서, 소방관의 명예를 대신한 상징으로서 책임감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개인의 잘못된 판단이 쉽게 꺼지지 않는 불길로 번진 오늘이 참으로 안타깝다.

이러나저러나 '소방관'은 모두의 손을 떠났다. 평가는 관객에게 달렸다. 다음주면 관객이 곽도원의 '불편한 사명감'에도 불구하고 지갑을 열어 보일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소방관'은 오는 12월 4일 개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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