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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험난한 메달 도전기' 소프트볼 끝이 아니다, 기죽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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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험난한 메달 도전기' 소프트볼 끝이 아니다, 기죽지 말지어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9.29 10: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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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베이징 AG 이후 노메달, 유망주 많아 국제 경험 늘리면 가능성 있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최대성 기자] 28일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소프트볼 한국-태국전이 열린 송도LNG야구장.

취재진은 거의 없었다. 기계체조, 수영, 야구장 등에서 벌어지는 자리 쟁탈전을 할 필요는 당연히 없었다. 기자는 여유 있게 경기장 전부를 둘러본 후 8명을 위해 마련된 보도석에 자리를 잡았다.

“잘 친다 김민영! 볼 잘본다 김민영! 한방 날려 안타!”

▲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실업팀 대구도시공사 선수들이 경기장을 찾았다. 손수 플래카드까지 만들어 동료와 언니들에게 힘을 불어 넣었다.

조용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경기장은 수많은 소프트볼 후배들로 가득 채워졌다. 신정여중 충북사대부중 봉산중 등 중학교 팀, 충북사대부고 일산컨벤션고 명진고 등 고등학교 팀, 실업팀 대구도시공사 선수들까지 1,3루 스탠드에 자리해 목청을 높여 언니들을 응원했다.

최하나(19·대구도시공사)는 “한국에서 열리는 큰 대회다. 플레이 하나하나를 모두 담아가려 한다. 우리나라 경기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 경기를 지켜보며 많이 배우고 있다”며 “언니들이 정말 멋지다. 나도 열심히 해서 빨리 대표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의지를 다졌다.

신규진(18·명진고)은 “멋지다. 열심히 운동해 국가대표에 발탁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며 부러워 했고 박근홍(18·명진고)은 “경기장 분위기를 보니 흥분된다. 요즘 운동이 잘 안됐는데 열정이 다시 끌어오르는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 태국전 선발로 나선 박수연은 일본에 소프트볼 유학을 다녀온 국내 최고의 투수다.

한국은 오전 열린 태국전에서 선발 박수연(부산체육회)의 4.1이닝을 3피안타 무실점 호투, 구원 양이슬(경남체육회)이 1.2이닝을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깔끔히 마무리하고 7-0 깔끔한 승리를 거뒀다. 전날 필리핀전 패배를 만회하는 이번 대회 첫 번째 승리였다.

◆ 험난한 도전기, 과연 이번에는?

한국은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부터 줄곧 아시아 3위, 동메달을 바라보고 달려왔다.

아시안게임 이외에 해마다 아시아선수권, 세계대회, 세계주니어대회에 나가 국제무대 입상에 도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아쉬움뿐이었다. 아시아의 소프트볼 강국 일본, 중국과 교류전을 통해 숱하게 깨지며 점차 실력을 다져왔지만 경쟁국들은 늘 한 발 더 앞서나갔다.

이번 목표 역시 동메달을 따는 것이다. 소프트볼은 야구(남자)와 함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정식종목에서 제외됐다. 아시안게임은, 특히 인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소프트볼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 '황창근호'의 도전도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끝이 아니다. 야구가 최고 인기스포츠인 한국에서 소프트볼은 자리잡을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

최철남 대한소프트볼협회장 이하 임원들, 일선의 지도자와 선수들 모두가 ‘아시아 3위’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런 대표팀에 비상이 걸렸다. 첫 경기에서 필리핀에게 1-3으로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한국은 이날 태국전과 중국전 모두를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일단 첫 관문인 태국은 가볍게 넘었다. 황창근(56) 감독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중국전은 올인이다”라며 필승을 다짐했다. 양이슬은 “죽기 살기로 임해야 하는 경기다. 자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시간30분 후 치러진 중국전. 타선이 침묵하며 0-1로 분패하고 말았다. 한국은 29일 일본전, 30일 대만전 중 한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객관적 전력에서 열세에 놓여 있어 메달 전망이 어둡게 됐다.

◆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예상 밖의 알짜배기 종목

김지섭(34) 씨와 임충택(30) 씨는 각각 경남 진주와 울산광역시에서 경기장을 찾았다. 이날 오후 문학야구장에서 열릴 야구 결승전(한국-대만)이 주목적이긴 했지만 빈틈을 활용해 알찬 일정을 채웠다. 그 시작이 바로 오전 9시에 펼쳐진 소프트볼이었다.

▲ 넥센 서포터즈 '히어로즈 사랑 영원히'의 멤버 임충택(왼쪽) 씨와 김지섭 씨는 목청을 높여 선수들을 응원했다.

이들은 경기장 분위기를 주도했다. 넥센 히어로즈 서포터이기도 한 이들은 우렁찬 목소리로 응원가를 불러댔다. 관중들도 하나씩 그들의 응원에 반응하기 시작했다. 무명의 선수들은 이날만큼은 슈퍼스타가 됐다.

김 씨는 “1994년 히로시마 대회부터 우리나라 소프트볼을 봐왔다. 시간 날 때마다 가까운 곳에서 경기가 열리면 찾는다”며 “외야수 심미형의 팬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사이에도 심미형(경남체육회)이 타석에 들어서자 “우윳빛깔 심미형!”이라고 우렁차게 외쳤다.

김 씨는 “야구보다 이닝수가 적지 않나. (소프트볼은 7이닝 경기를 한다) 경기장이 작은데다 공이 커서 더 잘 보이고(소프트볼 9.6~9.8cm로 7.29~7.48cm인 야구공보다 크다. 무게 역시 177~198g으로 141.89~148.8g의 야구공보다 더 나간다) 다칠 염려도 훨씬 적다”며 “아기자기한 맛이 소프트볼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 1번타자 포수 김민영은 대표팀 공수의 핵이다. 우투좌타인 그는 11년째 태극마크를 달고 있다.

투수가 18.44m에서 공을 던지는 야구와 달리 소프트볼은 13.11m에서 공을 던진다. 좌·우·중앙 펜스는 모두 67m다. 홈에서 베이스까지의 거리도 짧다. 절묘한 기습번트, 바운드를 크게 유도하는 배팅, 번트 수비시 만들어내는 더블 플레이 등은 야구의 재미와 비교해 전혀 뒤질 것이 없다.

임 씨는 “허구연 해설위원이 중요하다고 외치는 그 인프라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알기로 소프트볼은 전용구장도 하나 없다고 들었다”며 “우승까지는 힘들겠지만 언젠가는 한국 소프트볼도 아시아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고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문성필(42) 씨는 경기 광명에서 부인과 아들 둘과 경기장을 찾았다. 한국에서 열리는 큰 대회를 보기로 마음먹은 그는 생소한 종목에 눈길이 갔다. 인터넷 검색 도중 나온 ‘소프트볼’에 아내와 아들 둘과 함께 송도로 향했다. ‘무료’기도 했고 재밌는 종목들은 마침 매진이 된 터였다.

그는 “처음으로 접했다. 여자 종목이라서 느릿할 거란 생각에 기대도 안했는데 박진감이 넘치더라”며 “재밌는 종목을 알아가서 기분이 좋다. 비인기 종목 중에도 이렇게 흥미로운 것이 있는 것을 알고 간다”고 웃었다.

▲ 28일 인천 송도LNG야구장에는 800여명의 팬이 찾아 소프트볼을 즐겼다.

◆ 안타까운 눈물, 기적을 외친다

총 6개국이 참가한 여자 소프트볼은 예선 풀리그를 치른 뒤 상위 4개팀이 메달을 놓고 토너먼트를 치른다. 한국은 현재 1승2패로 일본(3승), 중국(3승), 대만(1승1패)에 이어 필리핀과 공동 4위에 올라 있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다"며 필승을 외쳤던 주장 석은정(27)은 중국전을 마친 후 "승부처가 있었는데 상황을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며 남은 대만전과 일본전에 '죽기 살기'로임할 것을 다짐했다.

심미형(22·경남체육회)은 "응원 소리를 들으며 힘이 났는데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여태껏 고생했던 생각들이 스쳐간다. 쉽지 않겠지만 남은 두 경기에서 후회없는 경기를 펼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양이슬(26·경남체육회)은 지난 2월 막을 내린 소치 동계올림픽의 컬링 선수들을 보며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도 좋은 성적을 낸다면 언젠가는 기업들의 후원을 받을 수 있겠다”고 말했던 그는 "결과가 좋지 않아 죄송한 마음 뿐이지만 점차 성장하고 있는 한국 소프트볼의 모습이 느껴져 희망을 봤다"고 전했다.

▲ 양이슬은 2012년 11월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아시아시리즈 때 소프트볼 선수를 대표해 시구를 한 적이 있다. 투수와 1루수, 외야수를 넘나드는 그는 대표팀의 분위기메이커다.

최선화(26·경남체육회)는 "많이 접해보지 못했던 볼이라 제대로 타격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경기를 돌아보며 "비 예보가 있다. 우천 관계로 변수가 많을것 같기 때문에 대만전, 일본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소프트볼 1세대가 말하는 한국 소프트볼의 미래는

김윤영(대구도시공사) 감독은 ‘한국 소프트볼 1세대’다. 황 감독의 팀인 경남체육회와 국내 대회 결승에서 자주 자웅을 겨루는 팀의 사령탑이다. 선수로는 1990년 베이징,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코치로서는 2002년 부산 대회에 참가했다.

그는 “국내 대회서 다양한 구질로 타자들을 손쉽게 요리하는 임미란도 국제 대회서 강팀을 만나면 3이닝을 버티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며 “결국 문제는 투수력이다. 평균 직구 스피드가 시속 95km 이상 되는 선수를 찾기 드물다”고 현 상황을 냉정하게 짚었다.

이어 “세계적인 소프트볼 흐름은 시속 100km 이상의 직구를 기본으로 갖추고 이에 다채로운 변화구를 첨가하는 추세”라며 “한국 선수들은 이런 공들을 접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방망이가 강해질 수 없는 환경”이라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 한국 소프트볼대표팀 선수들이 태국전을 승리로 마친 후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

결론은 역시 ‘경험’이다. '왜 여태 메달이 없냐'고 다그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펜싱이 국제대회 출전횟수를 대폭 늘려 런던 올림픽에 이어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효자 종목으로 발돋움한 것처럼 소프트볼도 아시아권은 물론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강국과 교류하며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한국이 정기적으로 출전하고 있는 대회는 현재 4개국(중국, 일본, 대만)이 겨루는 동아시아컵과 아시아선수권대회 정도가 전부. 아시아권의 우수한 투수들이 던지는 ‘라이즈’(야구의 라이징 패스트볼)를 공략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필리핀에도 그렇게 당했다. 한국 타자들은 6안타 1득점에 그쳤다. 중국전에서는 1안타 빈공에 허덕였다.

김 감독은 “그렇다고 희망이 없는 것이 아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괜찮은 투수 자원들이 적잖이 있다”며 “2019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을 바라보고 장기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2020년 도쿄 올림픽에 다시 정식종목으로 진입하게 될 경우도 철저히 대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 감독의 바람은 하나였다. 국제 대회 출전 횟수를 늘리는 것. 그는 경험만 제대로 쌓는다면 핸드볼, 펜싱, 축구처럼 소프트볼의 태극낭자들도 반드시 해낼 수 있는 친구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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