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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3남매 국가대표 키운 '빙상 맘'의 행복한 자식농사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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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인터뷰] 3남매 국가대표 키운 '빙상 맘'의 행복한 자식농사 비결
  • 박현우 기자
  • 승인 2014.12.24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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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주·승희·세영 '빙상 3남매' 어머니 이옥경씨, 여성스포츠대상 특별상…"뭘 고생했지? 생각하면 행복"

[300자 Tip] 2014년을 화려하게 수놓은 선수를 꼽자면 단연 김연아(25·올댓스포츠)와 손연재(20·연세대)다. 김연아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판정 논란과 시비 속에 금메달보다 훨씬 값지고 의미있는 은메달을 따내면서 현역에서 공식 은퇴했고 손연재는 인천 아시안게임 리듬체조 개인 금메달로 체조의 역사를 다시 썼다. 손연재는 지난달 윤곡여성체육대상을 수상한 데 이어 MBN 여성스포츠대상까지 수상했다. 그러나 이들은 혼자 큰 것이 아니다. 물론 자신들의 노력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겠지만 부모님의 헌신없이 이들이 세계적인 선수가 될 수 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 MBN 여성스포츠대상 시상식에서는 말 그대로 '특별한 사람'이 특별상을 받았다. 그 분의 이름은 바로 '어머니'다. 3남매를 국가대표로 키워내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 동반 출전케한 '빙상 맘'이다.

[스포츠Q 박현우 기자]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는 옛 말이 있다. 모든 어머니가 위대하겠지만 국가대표 선수를 키워낸 어머니라면 더욱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선수를 한 명도 아닌 세 명을 길러냈다면 어떨까.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에 나선 한국 빙상 국가대표팀에는 3남매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박승주(24), 박승희(22), 박세영(21) 남매였다. 이 가운데 박승주는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했고, 박승희와 박세영은 쇼트트랙에 나섰다.

아쉽게도 박세영은 남자 쇼트트랙의 부진 속에 메달을 따내지 못했고 박승주 역시 메달과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박승희는 여자 1000m, 3000m 계주 금메달과 500m 동메달을 목에 걸며 자존심을 지켰다.

이후 맏언니 박승주가 은퇴를 앞둔 가운데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 이상화에 이은 새로운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박세영 역시 2014~2015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시리즈 4차 대회까지 금메달 3개와 은메달 2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재도약하고 있다.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박승희, 승주, 세영 등 3명의 자녀를 모두 빙상 국가대표로 길러낸 어머니 이옥경씨가 22일 서울시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MBN 여성스포츠대상서 특별상을 수상한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

빙상 3남매의 활약은 역시 이들을 키워낸 어머니의 역할이 크다. 3남매의 어머니 이옥경(48)씨는 지난 22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열린 제3회 MBN 여성스포츠대상에서 국가대표 3남매를 키워낸 공로로 특별상을 수상했다.

3남매의 올림픽 동반 출전으로 어느 해보다 뜻깊고 행복한 한해를 보낸 '빙상 맘' 이옥경씨는 수상 후 "좋은 어머니가 되게 해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며 "운동을 하는 아이들의 어머니들을 대표해서 받는다는 마음으로 감사히 받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 "너무나 행복한 한 해…뭘 고생했는지 잊어버렸다"

박승희는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 계보를 이은 선수다. 2007년 ISU 쇼트트랙 월드컵을 시작으로 대표 선수로 활약했던 그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1000m와 1500m 동메달을 따냈다.

이어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에서 1000m 금메달, 1500m 및 3000m 계주 은메달을 따내며 여자 쇼트트랙의 에이스로 거듭난 그는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심석희(17·세화여고)와 함께 여자 쇼트트랙의 기둥이 됐다.

이후 박승희는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했다. 이제 전향한지 3개월 정도에 불과하지만 벌써 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시리즈에서 500m와 1000m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아직까지 500m에서는 폭발적인 스피드가 다소 모자라 중위권에 그치고 있지만 1000m에서는 기록을 줄여가고 있다.

특히 박승희는 지난 7일 독일 베를린에서 벌어졌던 월드컵 3차 대회 1000m에서 9위에 오르며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제갈성렬 전 대표팀 감독도 "쇼트트랙 선수의 장점인 코너워크를 살려 1000m에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며 "500m까지 좋은 성적을 올리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향을 하면서 연착륙한 것은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맏언니 박승주에 이어 박승희가 강인한 정신력으로 종목 전향에 성공하고 박세영도 남자 쇼트트랙의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것은 역시 어머니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이옥경씨는 한껏 자신을 낮췄다. 그는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감사하다"며 "이 상은 모든 부모들을 대신해 받는 것이다. 운동하는 아이들의 모든 부모님들에게 수상 자격이 있다"고 겸손해했다.

이어 "많은 마음 고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은 뭘 고생했는지 잊어버렸다"며 "뭘 고생했는지 물어오면 '내가 뭘 고생했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1년이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 선수의 숙명은 바로 부상이다. 훈련을 받거나 경기를 치르면서 발생하는 부상에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진다. 3남매가 모두 운동을 하다보니 크게 다쳐 이옥경씨의 마음에도 큰 생채기가 났다.

이옥경씨는 "아무래도 선수들이니 다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세영이는 크게 다친 적이 없지만 승희는 얼굴에 스케이트날이 들어가 입술이 찢어지고 치아가 나간 적도 있다. 왼쪽 어깨와 오른쪽 팔을 같이 다쳐 양쪽 모두 깁스를 하기도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박승주 역시 발목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다.

그래도 이옥경씨는 대표선수로 자라준 자녀들이 고맙다. 모두 자신의 길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들이 국가대표 선수로 잘 큰 것에 대해 만족한다. 애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계속 되뇌인다.

◆ "제일 속상해하는 것은 선수 본인, 잔소리는 금물"

국가대표 또는 스타 선수의 부모라면 부모들의 헌신적인 희생을 생각하게 된다. 또 자녀들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늘 조언하는 것을 보게 된다. 여자프로골프에서는 이 때문에 '골프대디'라는 신조어가 생겼고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을 보면 언제나 선수들의 어머니가 자녀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얘기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이옥경씨는 다른 부모에 비해 남다르다. 혼내거나 잔소리하는 것을 자제한다. "자신들을 달달 볶지 않고 잔소리하지 않는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며 "아이들은 경기마다 혼내거나 간섭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래서 나를 더 고마워한다"고 귀띔했다. 철학은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하는 것이다.

간섭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다른 부모들과 정반대의 길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집에서는 잘 탔는지 아닌지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며 "아이가 못하면 부모도 속상하다. 하지만 제일 속상한 것은 결국 선수 본인이다. 옆에서 더 말하기보다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 그냥 잘했다고만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 [스포츠Q 박현우 기자] 이옥경씨(왼쪽)는 둘째딸 박승희(가운데 사진)에게 "스케이트만 해서 안 해본게 많으니 많이 경험해봤으면 좋겠다. 다른 세상이 있는 걸 알면 좋겠다"며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바람을 나타냈다.

물론 여기에는 이옥경씨 본래 성격도 한몫 했다. 그는 "일부러 이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성격상 그랬다. 억지로 애들을 키우면 나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기들이 알아서 잘 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중, 고등학교나 대학교 경기 때 다치고 넘어지는 것은 대표 선발전이나 월드컵, 세계선수권 등에서 이를 겪지 않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해준다"며 "경기마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면 아이들과 부모 모두 지쳐버린다"고 밝혔다.

◆ 서로 돕고 격려하며 성장한 3남매 "키우기 편했다"

어머니 혼자서 세 자녀를 동시에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한 명도 아니고 세 명 모두를 국가대표로 만들었다면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옥경씨는 "오히려 셋이어서 힘이 덜 들었다. 좋은 점이 더 많았다"며 "자기들끼리 동기부여도 되고 서로 힘들 때 격려해준다. 운동이 힘들었던 날에는 집으로 가는 차에서 서로 얘기를 하다가 모든 것이 해결되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 아이만 운동했다면 엄마와 아이의 대화가 좋게 끝나지 않았을 것 같다. 세 명 모두 운동을 한 것이 오히려 잘된 것 같다"며 "종목도 다르고 성별도 달라 경쟁할 일이 없었다. 서로를 봐주면서 조언해주고 격려해줘 모두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 박승희(윗줄 왼쪽부터), 박승주, 박세영 3남매를 길러낸 어머니 이옥경씨는 앞으로 자녀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박승주는 은퇴를 선언한 뒤 미래를 계획 중이고 박승희와 박세영은 평창 올림픽 출전을 계획하고 있다. 사진은 박승희 트위터에 올라 있는 부모 박진호-이옥경씨와 3남매. [사진=박승희 트위터 캡처]

그렇다면 어떻게 3남매가 동시에 빙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이옥경씨는 "집 가까이 빙상장이 있고 학교에 빙상부가 있어 셋 모두 토요일에 특별활동으로 한 것이 시작이었다"고 말했다. 특별활동으로 시작한 운동을 3남매가 모두 좋아하게 됐고 결국 선수생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이옥경씨의 설명이다.

이제 3남매가 모두 선수생활을 할 날도 그리 길지 않다. 이미 맏언니 박승주는 올해를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박승희도 처음에는 소치 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하려고 했다가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해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박세영은 아직 21세여서 좀 더 남은 편이다.

이옥경씨는 "승희의 경우 앞으로 뭘할까 생각하다가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던 스피드스케이팅을 하게 됐다. 원래 승희는 초등학교 때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을 동시에 했었다"며 "승희도 어느 정도 탈 수 있을지 궁금해했고 쇼트트랙 올림픽 메달도 있었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도 도전했다"고 설명했다.

◆ 어머니의 교육철학 "좋아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는다"

이옥경씨가 기쁜 것은 박승희의 얼굴이 밝아졌다는 것이다. 스피드스케이팅이 새로운 도전이긴 하지만 여유를 갖고 하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

그는 "승희가 새로 배우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 그것만으로도 좋다"며 "물론 재미로 시작했지만 (평창)올림픽까지 갈 수 있다면 그것도 좋다. 하지마 지금부터 목표를 두면 너무 힘들어진다. 아직 올림픽까지 3년 정도 남은 만큼 여유있게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 [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옥경씨(오른쪽서 두번째)는 빙상 국가대표 세 남매를 키워낸 공로로 손연재(가운데) 등 유명한 선수들과 함께 같은 시상식 무대에 섰다.

이옥경씨의 철학은 예나 지금이나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선수를 할 때도 조언이나 잔소리를 하지 않았듯이 이들의 미래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지 않는다. 그 일이 행복하면 하라고 한다"며 "다만 스케이트만 해서 안해본 것이 많으니 많은 것을 경험했으면 하는 마음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승희는 평창 올림픽까지 갈 수 있으면 그때까지는 할 생각이다. 그 이후는 패션디자인을 하고 싶어한다"며 "또 승주도 자신의 길을 준비하고 있고 세영이는 평창 올림픽까지 가본 후에 미래를 결정하겠다고 한다"고 덧붙였다.

3남매를 길러낸 '위대한 어머니'는 앞으로 자녀들이 행복했으면 한다는 소박한 바람을 내비쳤다. "항상 밝고 웃을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고 자랑"이라고 말한다.

크게 잔소리하지 않고 간섭하지 않으며 옆에서 묵묵히 3남매를 지원해주고 용기를 북돋운 것이 빙상 국가대표 3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낸 비결이 아닐까.

[취재후기] 기쁠 때는 함께 기뻐하고 슬프거나 괴로운 일이 있으면 함께 마음 아파하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다. 특히 선수는 기쁨과 슬픔, 괴로움이 언제나 공존하는 직업이기에 선수를 자녀로 둔 어머니는 희노애락을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모든 영광과 스포트라이트는 바로 선수에게 돌아간다. 옆에서 묵묵히 지원하고 성원해준 어머니는 스포트라이트의 그늘에서 묵묵히 박수를 칠 수밖에 없다. 선수가 스타가 되고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기까지 선수의 땀과 눈물에 어머니의 눈물까지 더해져야 한다. 그렇기에 어머니는 진정한 '숨은 영웅'이다.

parkhw8826@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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