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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3연속 올림픽 본선행, '라바리니호' 지난 여정 돌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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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배구 3연속 올림픽 본선행, '라바리니호' 지난 여정 돌아보니
  • 김의겸 기자
  • 승인 2020.01.13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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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한국 여자배구가 돌고 돌아 올림픽에 간다. 사상 첫 외국인 사령탑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이 부임한지 어느덧 10개월이 흘렀다. 지난 여정 속에서 체질 개선에 어느 정도 성공했기에 더 큰 무대에서 보여줄 경기력에 큰 기대가 모아진다.

세계랭킹 공동 8위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은 12일 태국 나콘랏차시마 꼬랏찻차이홀에서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대륙별(아시아)예선 결승에서 태국(14위)을 세트스코어 3-0(25-22 25-20 25-20)으로 완파했다.

이번 대회 우승팀만 올림픽에 갈 수 있었고, 그 주인공은 ‘라바리니호’였다. 전날 ‘임도헌호’ 남자배구 대표팀은 이란에 석패했지만 여자배구 대표팀은 “두 번의 실패는 없을 것”이라던 약속을 지켜냈다.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본선 무대를 밟는다.

여자배구 대표팀이 3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사진=FIVB 제공]

◆ 벼르던 태국 잠재운 ‘참’리더 김연경

사상 첫 올림픽행을 위해 자국 리그 개막까지 늦추며 이번 대회를 준비한 태국은 결국 한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세계적인 세터 눗사라 톰콤을 중심으로 한 조직력과 촘촘한 수비로 한국에 맞섰다. 홈팬들의 열렬한 성원까지 등에 업었지만 김연경을 필두로 한 한국의 화력이 앞섰다.

김연경의 투혼이 빛났다. 복근이 찢어지는 부상으로 전날 열린 대만과 준결승에 결장했던 김연경은 이날 통증은 아랑곳없다는 듯 공수에서 맹활약하며 세계 최정상급 윙 스파이커(레프트)로서 위용을 뽐냈다. 22점으로 양 팀 통틀어 가장 많은 점수를 올렸다.

그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지난해 5월 터키여자배구리그 챔피언결정전을 마친 뒤 6월부터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8월 올림픽 대륙간(세계)예선, 아시아여자선수권, 9월 월드컵을 차례로 소화했다. 소속팀에 돌아간 후에도 FIVB 세계클럽선수권, 유럽배구연맹 챔피언스리그 등 여러 대회에 참가하며 쉴 새 없이 국경을 넘었다.

김연경(등번호 10)이 믿기 힘든 부상투혼을 발휘했다. [사진=FIVB 제공]

그럼에도 김연경은 힘든 내색은 사치라는 듯 동료들과 팬들을 안심시켰다. 지난해 12월 아시아예선을 위해 귀국하며 “힘들고 말고 할 때가 아니다”라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조별리그에서 김연경의 컨디션 관리에 힘썼지만 결국 그의 몸이 고장 났다. 9일 카자흐스탄전에서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고, 현지 병원에서 복근이 찢어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대만과 준결승에 결장했다. V리그에서는 외국인선수가 복근을 다칠 경우 교체를 감행할 만큼 큰 부상이다. 하지만 김연경은 이틀 휴식한 뒤 진통제를 먹고 결승에 선발로 나섰다. 그는 3세트 24-20 매치포인트에서 마지막 오픈공격을 성공한 뒤 오른쪽 주먹을 불끈 쥐며 기쁨을 표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에 따르면 그는 “이번 대회를 준비하며 오늘만 기다렸다. 올림픽에 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매우 감격스럽다”는 소감을 남겼다.

“김연경은 그냥 주장이 아니라 한국의 리더다. 카리스마와 실력으로 모두가 똘똘 뭉치게 단합하는 역할을 한다. 훌륭한 리더이자 훌륭한 사람”이라는 라바리니 감독의 말에서 김연경이 팀에 끼치는 영향을 알 수 있다.

라바리니호는 긴 여정 속에 발전했고, 그 성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진=FIVB 제공]

◆ 7개월 공 들인 라바리니 프로젝트는 현재진행형

간절했던 올림픽 티켓을 거머쥔 대표팀 멤버들은 결승을 마치고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기쁨을 만끽했다. 지난해 8월 러시아(5위)와 세계예선 최종전에서 2-0으로 앞서다 역전패 당한 뒤 모두가 부담을 안고 싸웠다. 소속팀에서 시즌에 돌입한 이후로는 체력 문제는 물론 부상과도 사투를 벌였다. 김연경은 “부담감과 책임감이 커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었다. 어제 많이 힘든 밤을 보냈다”며 “동료들이 도와준 덕에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다”고 했다.

라바리니 감독은 지난해 6월 VNL부터 팀에 색다른 배구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지휘봉을 잡으며 그는 세계배구의 트렌드를 한국배구에 접목했다. 전·후위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공격에 참여하는 속도감 있는 토털배구다. 현재 대표팀은 중요한 순간 김연경이 고전하더라도, 언젠가 그가 태극마크를 반납하더라도 흔들리지 않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과정 위에 있기도 하다.

그동안 다양한 대회를 치러내는 강행군 속에서 김연경 의존도를 낮추는데 주력했고, 이번 대회에서 빛을 발했다. 태국과 결전에서는 효과적인 서브, 다양한 공격 배분, 높이를 활용한 블로킹으로 태국에 단 한 세트도 주지 않았다. 한중일 동아시아 3국을 위협하며 빠르게 성장 중인 태국을 상대로 한국이 6년 만에 거둔 셧아웃 승리다.

이제는 에이스로 발돋움한 이재영이 이날도 18점, 종아리 통증을 안고 뛴 아포짓 스파이커(라이트) 김희진이 9점을 보탰다. 김연경이 많은 시간을 소화하지 않았던 조별리그와 부상으로 빠졌던 준결승에서도 박정아, 강소휘, 표승주 등 날개공격수들이 돌아가면서 제 몫을 다했다. 

이제는 이재영(왼쪽)과 김희진(오른쪽)이 김연경의 부담을 덜어주고 있다. 앞으로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변화다. [사진=FIVB 제공]

지난해 월드컵에서 김연경 의존도를 낮추면서도 세르비아(1위), 브라질(4위), 일본(6위) 등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하며 가능성을 보였다. 이재영과 김희진이 김연경보다 많은 점수를 냈던 대회다. 김연경, 이재영, 김희진이 공격 점유율을 일정 비율로 나눠 갖는 제법 믿음직한 삼각편대를 형성한 것이다. 김연경은 지속적으로 라바리니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에 신뢰를 보내며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클럽에서 빛나는 성과를 냈던 라바리니 감독은 이제 대표팀을 이끌고 처음으로 꿈의 무대인 올림픽에 나선다. 그는 “선수들이 우리의 목표에만 집중하면서 단 한 순간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부상자가 많아 모든 선수가 잘 뛸 수는 없는 상황이었는데 해냈다. 한국은 훌륭한 팀이다. 멋지다”며 감격에 젖었다.

주전 세터 이다영은 라바리니 배구의 중심에서 세대교체에 앞장서고 있다. 라바리니 감독을 만나 배구가 한 단계 더 성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담감이 너무 컸고 긴장도 많이 했다. 내가 경험도 부족하고 경기 운영도 미숙해서 감독님이 주문을 많이 하셨다. 칭찬도 많이 하시고 표현도 많이 하셨다”며 경기를 돌아봤다.

이재영 역시 허리와 발목 부상을 안고 뛰었다. “부상 선수가 많아 훈련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다들 참으면서 열심히 했다”며 “준결승에서 (김)연경 언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마음이 좋지 않았다. 꼭 본선 티켓을 따고 싶었고, 목표를 달성한 게 좋아서 다 같이 울었다”고 했다.

이재영은 “꼭 메달을 따고 싶다. 연경 언니와 함께 뛸 때 올림픽 메달에 도전해보겠다”는 말을 남겼다. 김연경(32)은 물론 리베로 김해란(36), 미들 블로커(센터) 한송이(36), 김수지(33), 양효진(31) 등 이번 대회에 출전한 많은 선수들이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에 도전한다. 지난 여정 속에 성장을 거듭한 라바리니호가 올림픽을 통해서 한국 여자배구에 또 어떤 값어치 있는 경험을 안고 돌아올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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