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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8) 공격탁구 선두주자 이시온, '닥공' 위해 '집중'에 집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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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챌린지 2015] (28) 공격탁구 선두주자 이시온, '닥공' 위해 '집중'에 집중하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5.06.15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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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탁구 이끌어갈 차세대 주자...적극적인 타법으로 세계랭킹 급상승

[200자 Tip!] 한국 여자탁구는 그동안 강한 수비를 바탕으로 상대의 범실을 유도하는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이 세계적으로 각광받았다. 그런데 여기 정반대의 스타일로 세계무대 도약을 꿈꾸는 도전자가 있다. 세계랭킹 102위 이시온(19·KDB대우증권). 1년 전과 비교해 86계단이나 뛰어오른 그는 아직 덜 여물었지만 날카로운 드라이브로 세계선수권대회 단식 2회전(6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거뒀다. 시니어 첫 메이저 대회에서 이룬 성과라 더 의미 있었다. 이시온이 공격 탁구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안양=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이시온은 최근 10여 년 간 한국 탁구를 이끌어온 여자 선수들과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다. 석하정, 당예서 등 중국에서 귀화한 선수들은 공격적인 탁구를 선호하지만 김경아, 박미영부터 서효원에 이르기까지 수비형 탁구의 계보를 잇는 선수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 이시온이 안양 호계체육관에서 훈련 도중 스카이 서브를 시도하고 있다. 공을 주시하고 있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이시온은 올해 실업팀에 정식 입단했지만 팀 훈련은 문산여고 재학 때인 2013년 말부터 함께 해왔다. 워낙 장래성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이시온을 지도하는 육선희(44) KDB대우증권 코치는 “지금까지 못 봤던 유형의 선수라 가르치면서 흥미로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지도법도 보통 선수와 다르다. 남성적인 탁구를 구사하는 것을 살려주면서 섬세한 부분을 컨트롤할 수 있는 훈련을 해나가고 있다. 육 코치는 “세밀한 부분을 보완한 뒤 경험을 쌓는다면 충분히 무서워질 수 있는 선수”라고 이시온을 평가했다.

파워풀한 탁구를 구사하는 이시온이 실업무대에서 그 자신감을 충전한 계기가 있었다. 바로 지난해 12월 여수에서 열린 제68회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여자 단체전 우승을 거머쥔 것. 당시 선수 한 명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팀을 나갔기 때문에 ‘4강에만 들자’는 게 KDB대우증권의 현실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이시온을 비롯해 또 한 명의 루키 이슬을 단체전 결승 1·2단식, 3복식에 파격적으로 투입한 KDB대우증권은 대회 8연패를 노리던 대한항공의 아성을 무너뜨렸다. 2007년 창단 후 첫 우승.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였다.

육선희 코치는 “어린 선수가 앞 순번에서 경기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텐데 이걸 이겨냄으로써 한 단계 성장했다”며 “이때 자신의 손으로 우승을 일군 것이 지금까지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상승세를 탄 이시온은 팀 선배 정영식과 짝을 이뤄 출전한 혼합복식에선 3위를 차지했다.

이후 상비군 신분으로 국가대표 선발전을 14승 5패(4위)의 호성적으로 통과한 이시온은 지난달 3일 중국 쑤저우에서 끝난 세계선수권대회서 단식 2회전(64강)에 오르는 성과를 거뒀다. 처음 출전한 시니어 세계무대에서 자신보다 랭킹이 높은 대만 선수를 제압하며 자신감을 더욱 높였다.

▲ 웃는 표정이 잘 어울리는 이시온. 그의 활달한 성격이 탁구에 그대로 녹아들고 있다. 공격적인 탁구로 상대의 기를 꺾는 이시온이다.

◆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이 반영된 탁구

활달하면서도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을 가진 이시온은 남다른 승부욕 때문에 탁구를 시작하게 됐다.

여수 백초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니에게 탁구를 가르쳐준 선생님의 아들과 우연히 탁구 대결을 벌였는데 그만 지고 말았다.

“그때 너무 화가 나서 탁구를 배우기 위해 레슨을 등록했어요. 열심히 연습한 끝에 그 오빠를 이겼지요. 선천적인 승부욕이 탁구를 시작한 계기였어요.”

그렇게 탁구선수로 길을 선택한 이시온은 탁구부가 있는 파주 문산초로 전학간 뒤 문산중, 문산여고를 거치며 국내 각종 주니어대회를 휩쓸었다. 또 2012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원래 뒤끝이 없으면서 남자같이 화끈한 성격이에요. 리더십도 있는 편이고요. 제 기분을 숨기기보단 표출하는 편이에요. 탁구 스타일도 성격을 따라온 것 같아요. 실수하더라도 과감히 공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 훈련만이 살 길이다. 이시온은 파워풀하면서 정확도가 높은 공격을 구사하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100% 본인 의지였다.

◆ 화려한 공격탁구 이면엔 '지옥훈련' 있었다

공격탁구를 구사하기로 결심한 이시온이 탁구의 '닥공(닥치고 공격)'의 롤모델로 삼고 있는 스타는 류스원(24·중국)과 펑 티안웨이(29·싱가포르)다. 각각 세계랭킹 2, 4위에 올라 있는 이들은 빠른 공격을 구사하면서 공수전환도 빠르다. 관중이 볼 때 시원시원한 탁구를 구사한다는 게 이시온의 설명이다.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남성적인 탁구를 선보이는 류스원과 펑 티안웨이는 오랫동안 세계 정상급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류스원은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3관왕(여자 단식·복식·단체전)을 차지했고 펑 티안웨이는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단식과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하지만 공격적인 탁구에 항상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워가 강해 상대의 반격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이시온은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어떤 훈련을 할까.

“평소에 공 다섯 개 단위로 치는 연습을 합니다. 처음엔 다섯 개의 공을 쳤을 때 모두 다 테이블에 넣기는 어렵습니다. 연속으로 세 개가 들어갈 때까지 치다보면 네 개가 들어가기도 하지요. 예전에는 집중력이 떨어져 두 개가 한계였는데 집중력을 높이다보니 네 개, 다섯 개가 테이블에 들어갔습니다.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훈련하는 게 답입니다.”

공격적인 탁구를 하면서도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이시온의 훈련 과정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 이시온은 "부상에서 회복했을 땐 잃었던 감각을 되살리는 게 우선이었다"고 말했다. 절실한 마음이 있었기에 힘든 것도 잊은 채 훈련에 몰두한 이시온이다.

선수 생활을 하면서 위기도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어깨를 다쳐 1년간 라켓을 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복귀 후 감각이 완전히 떨어졌다. 이시온은 이를 되살리기 위해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도 쉬지 않고 훈련에 몰두했다. 무조건 남들보다 오랜 시간 탁구에 매달렸다.

이시온은 “탁구를 하는 감각이 타고난 선수가 있는 반면 나는 그 반대였다. 피나는 연습으로 감각을 되살려야 했다”며 “그때는 지금보다 어렸기 때문인지 힘든 것도 모르고 운동에 올인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 "지도자를 이끌어줄 수 있는 선수"

이런 근성을 가진 선수는 웬만한 지도자도 만나기 힘들어 보인다.

육선희 코치는 “본인이 운동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며 “코칭스태프가 기술적인 보완을 지시하면 곧바로 받아들인 뒤 고치려 노력한다. 또 본인이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면 항상 질문을 하는데, 이런 열정이 정말 남다르다”고 이시온을 칭찬했다.

그러면서 “선수를 끌고 가는 지도자는 많지만 지도자를 끌고 가는 선수는 드문 게 현실이다. 지도자가 열정이 많아도 선수가 목표의식이 없으면 지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시온이는 지도자가 뭔가를 의욕적으로 할 수밖에 없게끔 만든다. 이건 시온이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극찬했다.

육 코치는 앞으로 이시온이 부족한 점을 다듬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전지희, 양하은을 잇는 대선수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시온은 “일단 9월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 게 목표다. 선발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한다”며 “최종 목표는 올림픽에 나가 메달 색깔과 상관없이 메달을 획득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소속팀 코칭스태프의 조련 속에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이시온이 한국 여자탁구에 붐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진다.

▲ 이시온(왼쪽)이 육선희 KDB대우증권 코치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육 코치는 "시온이는 지도자를 끌고 갈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 선수"라고 칭찬했다.

[취재후기] 이시온에게 탁구는 엔도르핀이다. 운동하기 싫은 날도 있지만 막상 테이블 앞에 서면 웃음이 난단다. 다른 좋은 일이 있는 것보다 탁구가 잘 될 때 기쁘다는 이시온은 천상 탁구선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공격 탁구의 길을 택했을 때 두려움보다는 모험심이 앞섰다는 이시온. 그의 시원시원한 드라이브가 메이저 무대에서 펼쳐질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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