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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벽의 용하 '도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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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벽의 용하 '도희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5.23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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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자 Tip] 지난 2010년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로 한국영화계에 등장한 송새벽은 파격이었다. 어떤 배우에게서도 보지 못했던 독창적인 표정과 말투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영예로운 호칭을 달아줬다. 이듬해 사극 ‘방자전’의 이제껏 볼 수 없었던 변학도 역으로 각종 영화제 신인상과 남우조연상을 휩쓸었다. 삶이 체화된 연기의 결로 신뢰를 얻어온 그가 코믹함을 지우고 제대로 된 악역에 도전했다. ‘도희야’(22일 개봉)의 박용하를 맡으며 한뼘 더 성장한 송새벽은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영광까지 얻었다. 15년 넘는 배우생활을 ‘놀이’로 해왔듯 앞으로도 잘 놀고 싶기를 소망한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호기롭게 발차기로 사과를 격파하던 세팍타크로 형사(마더)는 “너 자꾸 그러면 내가...좋다”며 지분거리는 변태 변학도(방자전)를 거쳐 외딴 바닷가 마을의 절대 권력자 박용하(도희야)로 스크린을 채우고 있다.

제67회 칸 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아 돌풍을 지핀 ‘도희야’(감독 정주리)는 가정폭력에 노출돼 살아가는 14세 소녀 도희와 새로 부임해온 마을 파출소장 영남, 도희를 감싸 안는 영남과 사사건건 대립하는 도희의 의붓아버지 용하를 세 축으로 전개된다. 칸으로 출국하기 직전인 지난 17일, 삼청동의 작은 카페에서 배우 송새벽(35)과 만나 키워드 보따리를 풀었다.

콘티북 같은 시나리오 바다, 바람, 짙푸른 녹색 등 한적한 바닷가 마을 풍경이 잘 묘사됐다. 이런 평화로운 마을에서 폭발적 사건이 일어나는 게 아이러니하면서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흥미로웠다. 상상을 자극하는 지문과 대사, 어느 동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굉장히 잘 쓰여진 시나리오였다. 묘사가 꼼꼼하게 돼 있는데다 쉽고 명확해 누구나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는 콘티북 같았다.

 

박용하 작품은 너무 좋은데 역할에 대한 구체적 느낌이 들질 않았다. 시나리오에 명확한 표현이 없어 추상적이고 난해했다. 박용하에 대한 연민(가출한 아내, 부양해야 하는 노모와 의붓딸, 답답한 시골생활)과 행동에 대한 당위성을 염두에 뒀다. 그러다 감독으로부터 “도희가 저대로 성장했다면 용하가 되지 않았을까요?”란 조언에 무릎을 쳤다. 외로움으로 피폐해진 인물! 감정선을 구축하며 용하를 찾아갓다. 그 뒤부터 흐릿했던 표현이 오히려 (해석할)여지가 많아 좋게 여겨졌다.

김새론 새론이가 도희를 맡지 않았으면 했다. 너무나 잘하겠지만, 그가 소화해왔던 버거운 캐릭터들을 떠올리니 더 이상 안 했으면 하는. 캐스팅 확정 소식이 들렸을 땐 좋기도 하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해맑게 웃으며 “저 맞는 연기 잘 해요. 편하게 하세요”라고 말할 때, 와우~. 폭력장면을 찍기 전후론 눈물 흘리고 구토하고 그랬다.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지 회의가 엄습했다. 그런데 막상 촬영에 임하니 야무지고 프로페셔널한 배우였다. 툭툭 털고 훅 가더라. 괜한 기우였다. 내 앞가림이나 잘 하지 원.

배두나 2012년 옴니버스 영화 ‘인류멸망보고서’에서 오타쿠 삼촌과 조카로 잠깐 공연했기에 아쉬움이 컸다. 동갑내기 친구 사이다. 배두나는 시나리오를 읽고 5분 만에 OK했다. 서로 연기를 주고받을 때 너무 훌륭한 친구다. 그냥 좋은 기운이 느껴진다. 극중에선 대립하는 관계이지만 촬영장에선 서로 힘이 되려고 노력했다. 특히 도희에 대한 애정이 우리 둘 다 컸다. 도희를 빛내주기 위해 ‘좌청룡 우백호’가 되자고 결의했을 만큼. 20년만 젊었어도 우리가 도희 역에 도전했을 텐데, 하면서 깔깔거렸다. 좋은 의기투합이었고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

 

79년 동갑내기 배두나를 비롯해 감독, 프로듀서, (김)새론이 엄마 모두 79년 동갑내기다. 각자 개성이 워낙 강하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늘 업되고, 현장은 ‘위 아 더 프렌즈’ 분위기였다. 새론이 엄마는 아주 활달하다. 감독님은 얌전한 소녀 분위기인데 ‘한 방’이 있다. 프로듀서는 어머니 같은 조력자? 두나는 쾌활한 에너자이저. 재미난 영화작업이었다.

보라색 티셔츠 용하의 의상을 두고 고민하다 군복바지와 보라색 티셔츠를 고안했다. 권위적이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마을을 좌지우지하는 용하가 왠지 군복바지를 입었을 거 같았고,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질까 궁금하기도 했다. 보라는 광기를 나타내는 색이라고도 하더라. 장면에 대한 개연성으로 인해 선택했다. 감독님이 흔쾌히 받아들여 이 의상을 입었다. 의상팀에선 주황색 남방을 준비했다.

사투리 전북 군산이 고향이다. 그런데 충청도와 인접한 전북에서는 전라도 사투리가 강하질 않다. 물론 부모님 고향이 완도라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많이 들어 친숙하다. 그래도 극중 사투리를 능숙하게 구사해야 하기에 목포에 사는 형님에게 뉘앙스와 인토네이션, 특히 까다로운 어미 처리 방법 등을 물어보고 교정받고 그랬다. 전라도 말이 톤에 따라서 의미가 확확 틀려진다.

 

베스트 신 촬영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다. 용하가 툇마루에 걸터앉아 술을 마실 때 도희가 두부를 집어 용하의 입에 물려주면 용하가 지긋이 새론의 눈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촬영에 앞서 준비한 (연기)뉘앙스가 있었는데 순간 새론이 나를 다른 ‘데’로 데리고 가더라. 너무 좋았다. 오랜만에 맑고 깨끗한 그 눈빛을 보면서 내 자신이 맑아지고 힐링되는 느낌이 들었다. 또 하나 꼽으라면 도희가 영남을 따라 마을을 떠나는 장면. 기대와 후련함에 속으로 되뇌었다. “도희야, 이제 용하 만날 일 없어. 걱정하지 마!”

이창동 감독 ‘도희야’의 제작자이신 이 감독님을 뵙고 대화를 나눈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 소속 극단 대표님처럼 날 바라봐 주시더라. 감독님께서 “새벽씨는 메소드(배우 자신을 버리고 캐릭터 그 자체로 변화하는 연기법) 연기자야”란 말씀을 해주셔서 몸둘 바를 몰랐다. 캐릭터를 맡았을 때 내면에 있는 부분을 끄집어내 연기하는 거니까, 배우는 항상 작품마다 바뀌는 건데... 현장에 맞게 열심히 하라는 말로 받아들였다. 선생님 같이 든든한 분이다.

칸 국제영화제 첫 방문이다. 공식 스크리닝과 기자회견, 매체 인터뷰 등 일정을 잘 소화하고 인터뷰를 잘 치러야겠다는 생각이다. 두나가 두 번째니까 잘 안내하지 않을까? 하하. 멋진 레스토랑이 있다며 데려간다고 했다. 아내를 놔두고 혼자 가는 거라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아무튼 우리 영화의 메시지를 해외 언론과 관계자들이 좋게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 '도희야'에서 다양한 얼굴을 드러내는 송새벽

연극 대학(군산대 철학과) 졸업 후 1998년부터 연극무대에 올랐다. 배우에 대한 철학이나 꿈이 있어서 시작했던 게 아니었다. 친한 선배들이 극단 소속이라 함께 어울려 노는 방법을 찾다가 연기를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연극이 놀이가 됐다. 욕망, 절치부심 그런 뒤끝 없이 했다. 그 세월, 즐기면서 잘 생활해온 것 같다. 서른이 넘어서 되돌아보니 어마어마한 것이더라. 무대 위에서 놀 수 있다는 게. 요즘 큰 숙제는 ‘과연 내가 잘 놀고 있는가’이다. 앞으로도 잘 놀아보자고 각오를 다진다. 맛을 알아버린 이상 포기할 수 없는 게 연극이다. 고향과 같은 존재라 평생 연극을 할 거다.

[취재후기] 스크린에 흐르던 코믹함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 가끔 웃음을 터뜨리긴 하나, 신중하게 단어를 고르면서 대화를 이어간다. 예민한 사람이다. 그런 예민함이 디테일을 놓치지 않고 캐릭터에 최적화된 표현양식으로 전환하는 힘일 것이다. 쉬워보이나 까다롭고, 정오의 태양인 줄 알았으나 빛을 머금은 새벽의 일출 같은 배우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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