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묵은 먼지' 대청소, 아이들에게 필요한 NEW '백설공주' [Q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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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묵은 먼지' 대청소, 아이들에게 필요한 NEW '백설공주' [Q리뷰]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5.03.23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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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기성세대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디즈니는 자라나는 어린이를 위한 세계다.

지난 19일 디즈니의 첫 번째 프린세스 '백설공주' 실사 영화가 개봉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영화는 개봉 직후 2점대(네이버 기준)의 평점 테러를 당하면서 강력하게 비난받고 있다. 흑인 배우를 캐스팅한 '인어공주'(2023)와 동일한 현상이다. 

개봉 전부터 크게 논란이 된 부분은 백설공주의 '얼굴색'이다. 왜 하얀 얼굴의 백설공주를 라틴계 배우로 캐스팅했냐는 불만이 여러 곳에서 터져 나왔다. '백설'(Snow White) 설정을 유지하기 위해 눈이 오는 날 태어났다는 억지 설정을 더했다는 비판도 더해졌다.

영화 '백설공주'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백설공주'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러나 '백설공주'의 원작격인 그림 형제의 민담 모음집에 따르면 백설공주는 하얀 눈이 내리던 날 태어난 아이다. 그의 이름은 태어난 날과 연관 있다. 물론 왕비가 하얀 눈을 닮은 피부색을 가진 아이를 원했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나, 이를 지워도 '백설'은 성립한다. 그렇다면 대중은 왜 피부색에 이토록 집착할까? 일반적으로 편집, 출판된 백설공주는 이름의 출처를 삭제한 결과물이다. 젊고 아름다운 여자와 아름답지만 늙은 여자의 싸움에서 아이가 태어난 일시같은 건 크게 중요치 않다. 백설공주는 '아름다운 공주'로 명시되고 하얀 피부색과 까만 머리, 빨간 입술 등 캐릭터성이 뒷받침한다. 이에 익숙한 대중들은 '백설공주는 백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기 마련이다.

디즈니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1937) 역시 "옛날 옛적 백설공주라는 아름다운 공주가 살았답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하지만 여기서 피부색은 백설공주의 '미모'를 드러내는 설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영화가 여성들이 겪는 사회적 외모 강박을 비판하고 "내면의 아름다움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주고자 한다면 이 설정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최근 여성의 외모 강박을 보디 호러 장르로 풀어낸 '서브스턴스'가 칸 국제 영화제, 토론토 국제 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국내 개봉 청불예술영화로는 55만명이라는 유의미한 성적을 냈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강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주 타깃이 여성 아동인 디즈니가 이러한 흐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PC) 과잉이 아닌 당연한 이치다. 

영화 '백설공주'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백설공주'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어린이를 위한 스토리텔링을 이어온 디즈니는 21세기 이후 '백설공주', '인어공주' 등을 다시 쓰고 '위시', '모아나', '겨울왕국' 등 창작 프린세스를 만들며 새로운 여성상을 그려가고 있다. 주체적인 여성을 내세워 '무엇이든 소원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에는 아이들이 '차별 없는 내일'을 살아가길 바라는 소원이 담긴다.

가까운 일본만 하더라도 기성세대 뼛속에 자리한 무의식 차별을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본신문노동조합연합(일본신문노련)은 '젠더 표현 가이드북'을 펴내며 가장 먼저 '먼지 차별'을 제시한다. '차별할 의도가 아니었다', '악의가 없었다'는 말 아래 강화되는 성차별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목소리다. "젠더 평등을 하루빨리 실현하려면 우리의 표현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일본신문노련의 지적은 디즈니에도, 한국 사회에도 통한다.

디즈니가 '백설공주'를 새롭게 써내린 배경에는 과거의 창작자들이 '의도치 않게' 강화해 온 젠더 불평등에 대한 반성이 담겨있다.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속 백설공주는 가부장제에 종속한 현모양처로 그려진다. 작고 연약한 동물들과 일곱 난쟁이를 살뜰하게 보살피고, 탄광 일을 하러 나선 일곱 난쟁이를 기다리며 설거지, 빨래, 요리 등 집안일을 하는 '내조의 공주'는 일곱 난쟁이와 왕자의 구애 대상이 된다. 독사과를 먹고 일시적으로 죽은 상태에서도 남성의 선택과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여성으로 남는다. 1930년대 먼지 차별은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들에게 스며든다.

최근 여성의 외모 강박을 보디 호러 장르로 풀어낸 '서브스턴스'가 칸 국제 영화제, 토론토 국제 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 및 시상식에서 상을 휩쓸고 국내 개봉 청불예술영화로는 55만명이라는 유의미한 성적을 냈다.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적 강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거세지고 있다. 주 타깃이 여성 아동인 디즈니가 이러한 흐름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는 것은 정치적 올바름(PC)이 아닌 당연한 이치다. 
영화 '백설공주' 스틸컷. [사진=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2025년의 백설공주는 더 이상 남성을 위해 헌신하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로부터 배운 희망을 행동으로 바꾸고,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랑을 깨닫는다. 고립된 삶을 살아온 백설공주가 처음 본 이성에게 느낀 감정을 사랑으로 명명하고 자신의 삶을 바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기보다 눈앞의 말에 올라타 위험에 처한 이들을 구하는 길을 택한다. 부득이하게 머물게 된 일곱 난쟁이의 집에서도 엉망이 된 공간을 깨끗하게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줄 뿐이다.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가 스스로를 돌볼 수 있도록 돕고,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디즈니는 새로운 '백설공주'를 통해 오래된 먼지를 걷어낸다.

‘백설공주'는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러닝타임 109분. 전체 관람가. 쿠키영상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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