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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5cm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 이재우 '단점을 장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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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95cm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 이재우 '단점을 장점으로'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26 0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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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돈키호테'서 바질리오 변신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김윤식(플로어1 스튜디오)]

# 장면1. “농구 선수하는 게 어때?" 중학교 3학년 때 이미 190㎝에 육박했다. ‘무거운 것을 많이 들면 키가 안 큰다’고 해서 하루 2시간 동안 낑낑대며 70㎏짜리 바벨을 들었다. 발레 소년은 2m를 넘을까봐 늘 조마조마했다.

# 장면2. 지난 4월11일 ‘백조의 호수’ 공연이 끝난 직후 강수진 국립발레단 단장이 무대 위로 올라와 관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솔리스트 이재우를 수석무용수로 승급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그랑 솔리스트를 거치지 않은 ‘초고속 승진’이었다. 강 단장은 “맡은 역에 최선을 다하며 남아서 늘 연습하는 무용수”라고 칭찬했다.

▲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왼쪽)이 이재우를 수석무용수로 승급 발표하는 장면[사진=국립발레단 제공]

◆ 체력소모 큰 장신의 한계 극복 위해 근력강화·연습에 올인

일반적인 국내 발레리노의 신장은 170cm 후반에서 180cm 초반이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재우(23)는 신장이 195cm다. ‘국내 최장신 발레리노’로 불린다. 프로배구의 좌우 공격수나 농구의 센터에 버금가는 키다.

장신 무용수의 치명적인 단점은 헐렁한 허리 라인. 신체가 크다보니 에너지와 체력소모가 더 크고 피로도가 곱절은 된다. 이외 상대 발레리나와의 그림(비주얼), 단단한 근육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무대에서 자칫 처져 보이는 점 등 극복해야 할 과제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키가 클수록 동작하기가 어려워요. 짧은 장대보다 긴 장대를 휘두르는 게 힘든 것처럼요. 키가 커 둔하다는 말 안 들으려면 연습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죠.”

땀과 노력만이 필요했다. 일단 체력강화를 위해 보충운동에 매진하고 음식을 많이 섭취했다. 허술하고 둔탁한 움직임을 없애기 위해 복부 근력을 키웠다. 하나의 테크닉을 얻는 데 2년씩 걸릴 만큼 연습 또 연습했다. 밤 10시30분까지 근육 운동과 춤 연습으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갔다.

 
 

결점을 보완하니 어느 남성 무용수도 표현하기 힘든 강렬하고 시원시원한 춤이 나왔다. ‘스파르타쿠스’의 검투사 크랏수스를 연기할 때 분장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다. 그럼에도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발레단에서 연습벌레로 통하는 그는 매일 밤 12시 경비아저씨가 문을 닫을 때까지 연습한다.

“키가 크니까 못할 거란 소리가 너무 듣기 싫었어요. 힘을 많이 기르면서 동작과 테크닉을 연구하고, 다른 무용수의 공연을 참조하고, 무대에서 시도해보고, 실수하고를 반복했어요. 저 자신을 채찍질하는 동안 얻는 동작이 많아졌죠. 이젠 점프로 하는 테크닉이나 바뜨망(한쪽 발을 앞, 뒤, 옆으로 들었다가 내리는 동작)으로 시작하는 테크닉은 다 자신 있어요.”

◆ 입단 5년만에 테크닉·연기력 겸비한 수석무용수로 우뚝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재학 중이던 2009년 연수단원으로 국립발레단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연수단원임에도 ‘백조의 호수’의 악마 로트바르트와 ‘호두까기 인형’의 드로셀마이어를 소화해 두각을 나타냈다. 2011년 준단원 때 ‘호두까기 인형’의 왕자로 주역 데뷔했고 이듬해 정단원이 되면서 낭만발레 ‘지젤’의 남자주인공 알브레히트에 발탁됐다.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되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자신의 키에 맞는 발레리나가 드물어 애를 태워야했기 때문이다. 한예종 동창이자 동갑내기 발레리나 이은원(168cm)과 호흡을 맞추며 숨통을 틔웠다. 이은원은 “재우는 키가 큰데도 못하는 테크닉이 없다”며 “발레리노의 키가 크면 리프트 동작과 실어나를 때 편안해서 믿음직스럽다”고 말했다.

반면 관객은 여자 무용수가 너무 높이 들어올려져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또 발레리나가 너무 작아보이는 단점이 있어 자신을 안을 때 이재우가 살짝 몸을 구부려주는 등 기지를 발휘한다고 귀띔했다.

지난해 블록버스터 발레 ‘라 바야데르’ 초연 시,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눈에 띄어 라자 역을 맡아 물오른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7월 ‘차이콥스키: 삶과 죽음의 미스터리’를 통해 현실과 자아 사이에서 고뇌하는 작곡가 차이콥스키 역을 탁월하게 소화, 호평받았다. 올해 ‘백조의 호수’에서는 왕자 지그프리트와 악마 로트바르트 역으로 5회 공연 모두 출연했다.

 

“‘지젤’은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었고, ‘스파르타쿠스’는 내면연기의 방법을 터득한 작품이에요. ‘차이콥스키’는 복잡한 캐릭터와 어려운 동작을 풀어내는 길을 찾은 작품이고요. ‘백조의 호수’는 상상도 못한, 꿈같은 승급을 안겨준 작품이고. 모두가 소중하죠.”

◆ 5세부터 무용시작…“고통 큰 만큼 무대 위 희열 대단”

10대 중반 이후 발레를 시작한 다른 발레리노들과 달리 이재우는 어머니의 권유로 5세부터 무용학원에 다녔다.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를 모두 배웠다. 그중 발레에 가장 끌렸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국립발레단 부설 아카데미에서 영재 교육을 받았고, 한예종 예비학교와 선화예중 무용과에 연이어 합격했다.

“새로운 재미를 계속 느끼다보니 지금까지 해오게 된 것 같아요. 하다보면 재밌고 매일 새로워요. 연습과 부상 등 무대 밖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올라 춤추고 난 뒤 박수를 받으면 그 희열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죠. 고통이 큰 만큼 기쁨의 무게도 더 커지는 거겠죠.”

 

◆ 26일 개막 희극발레 ‘돈키호테’서 이발사 바질리오 열연

이재우는 26일 막을 올리는 희극발레 ‘돈키호테’(29일까지·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마을 이발사 바질리오를 연기한다. ‘돈키호테’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명랑한 소녀 키테리아와 낙천적인 이발사 바질리오의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투우사 춤, 부채와 탬버린을 이용한 세기디야, 플라멩코, 판당고 등 스페인 전통 춤과 발레 동작을 섞었다.

“바질리오는 간이 큰 장난꾸러기예요. 예비장인에게도 장난을 칠 만큼 대담한 인물이죠. 전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운, 기복이 심한 성격이거든요. 어떻게 풀어갈지 고민이에요. 한 선배가 ‘이 작품은 신나게 하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그걸로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고요. 하하.”

스페인 전통 춤과 클래식 발레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동작이 많다. 대신 3막에 이르기까지 고난도 테크닉을 많이 요구해 힘을 유지한 채 테크닉이 들어가는 동작을 완벽하게 표현해내려 공을 들이고 있다. 기분 좋게도 키테리아 역에 절친이자 체력이 좋은 이은원이 캐스팅돼 후반부까지 마음 편하게 작품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어 안심이다.

▲ '돈키호테'의 바질리오 이미지 컷[사진=국립발레단 제공]

“‘돈키호테’는 배경인 스페인 광장의 에너지가 크고 신나는 작품이에요. 미묘한 마임과 스토리가 풍부해서 미리 찾아본 뒤 관람을 하신다면 훨씬 재밌을 거예요.”

[취재후기] 왕자와 전사. 요즘들어 남성발레 작품이 확대되는 추세이긴 하나 발레리노가 주로 소화하는 대표적인 캐릭터다. 의외다 싶게 우아하고 거만한 느낌의 왕자 연기가 더 편하다고 답했다. 이런 작품들을 연이어 하며 익숙해진 것 같다는 해명(?)과 함께. 몸 만드는 걸 좋아한다는 그는 여유가 생길 때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빠져 지낸다. 틈틈이 사우나에서 만화책 보는 걸 즐긴다. 단점을 장점으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이 승부사가 김현웅, 이동훈, 이영철, 정영재 등 스타 발레리노가 즐비한 국립발레단에서 어떤 성과를 일궈낼지 자못 궁금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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