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4 11:00 (토)
[인터뷰] 도발하는 시네아스트 '이우끝' 김경묵 감독
상태바
[인터뷰] 도발하는 시네아스트 '이우끝' 김경묵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29 14:1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독립영화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이하 ‘이우끝’·지난 26일 개봉)는 도시의 얼굴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알바생인 대학생, 자퇴생, 인디뮤지션, 취업준비자, 게이·레즈비언, 탈북자, 중년 실직자와 점주 그리고 편의점을 오가는 손님들을 통해 도시의 현실과 청춘의 실상을 그린다.

 

메가폰을 잡은 김경묵(30) 감독은 스무 살이던 2004년 다큐멘터리 ‘나의 인형놀이’로 연출을 시작, 이듬해 첫 장편영화 ‘얼굴 없는 것들’, 2008년 ‘청계천의 개’의 시나리오·기획·연출·제작을 도맡았다. 실험성이 팔딱이는 그의 작품들은 밴쿠버, 로테르담, 전주국제영화제 등 국내외 유수의 영화제에 초청받았다.

세 번째 독립 장편영화 ‘줄탁동시’(2012년)는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부문에 초청된 이후 런던, 홍콩국제영화제 초청에 이어 토론토 릴 아시안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했다. 탈북소년과 게이소년을 예리한 시선으로 포착한 이 작품은 퀴어 시네마이자 성장영화, 서울이라는 공간을 집요하게 탐색한 로드무비로서 풍부한 영화적 표현력을 장착, 그에게 ‘도발적 시네아스트’ ‘한국의 자비에 돌란’이라는 호칭을 안겼다. ‘이우끝’의 개봉을 앞두고 홍대 상상마당 KT&G에서 김 감독을 만났다.

- 편의점을 소재, 배경으로 선택한 이유가 무언가.

▲ 도시에 살면서 가장 자주 들르는 곳이 편의점인데 모든 게 가능한 점이 흥미로웠다. 택배와 같은 우체국 업무, 현금인출 및 영수증 납부와 같은 은행업무도 다 처리할 수 있지 않나. 28세이던 재작년 말부터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20대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편의점이 한국사회의 축소판, 단면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편의점 시스템은 신자유주의 시대 시장상황과 밀접하다. IMF 이후 고용유연화 정책과 떼기 힘들다.

▲ '이우끝'의 신재하와 공명(사진 위), 정혜인과 유영(아래)

- 지난해 편의점주의 잇따른 자살과 가맹본부의 횡포가 이슈화됐다. 이에 영향받은 건가.

▲ 편의점을 주인공으로 생각했다. 손님과 알바생, 그들은 어쩔 땐 갑이 되고 어떤 상황에선 을이 되기도 하는 관계다. 점주가 알바생들에겐 갑이지만 영화 마지막에 가면 을이 되면서 몰락하지 않나. 지난해 편의점주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본사와 가맹점 사이의 착취구조에 기반한 갑을관계가 영향을 많이 줬다. 영화에 이런 사회적 구조를 녹여내려 했다.

- 왜 다수의 편의점 알바생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나.

▲ 편의점 알바생은 어디서든 구할 수 있는 인력이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시간 조절이 가능하고, 손쉽게 접근하는 노동환경이다. 시급은 가장 낮다. 한마디로 언제나 교체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고용이 유연하다. 교체가 가능하단 것은 인물들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단 말이고, 여러 인물을 다루기에 최적이다. 청년들의 이야기를 하기에도 좋은 공간이고.

 

- 영화에 나오는 편의점 느낌이 묘하다. 도심 한복판에 있지 않은 데다 한적한 주변 환경이 특이하다.

▲ 사회와 동떨어진 느낌이 났으면 했다. 세트를 지을 예산이 부족해서 경기도 용인 국도변의 한 개인 소유 편의점을 섭외했다. 무척 어려웠다. 하하. 지난해 8월 말부터 9월 초에 걸쳐 단 12회차 만에 촬영을 초스피드로 끝냈다.

- 저예산 독립영화임에도 요즘 한국영화계 트렌드인 멀티 캐스팅이라 깜짝 놀랐다.

▲ ‘줄탁동시’에 출연했던 배우 김새벽과 이바울, ‘청계천의 개’에 출연했던 이주승을 캐스팅했다. 나머지 알바생들은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다. 손님으로 출연하는 '전국노래자랑'의 이종필 감독과 윤영미 아나운서는 개인적 친분으로 섭외했다. 너무 많은 이야기, 제작상황의 한계(리허설과 여유 있는 촬영기간 부족) 탓에 역할에 어울리는 배우 캐스팅이 제1의 원칙이었다. 배우들이 20대 또래집단이라 소풍오듯 현장에 와서 즐겁게 촬영했다.

- 언급한대로 10개가 넘는 에피소드, 주연을 맡은 9명의 젊은 배우들로 인해 조율할 게 많았을 것 같다.

▲ 배우들과는 리허설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대화하고 현장에선 배우에게 많이 맡겼다. 하루에 에피소드 하나씩 촬영이 이뤄졌으니 아주 빠르게 현장이 돌아갔다.

▲ '이우끝'의 극중 에피소드 장면. 지용 역의 이주승(사진 아래 오른쪽)

- 모든 배우들이 소중하겠지만 인상적인 배우를 꼽아달라.

▲ 이주승이 맡은 알바생 지용은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인물로 사람들(알바생들)의 신분증을 수집한다. 배우의 이미지 자체가 신비해 모호한 캐릭터를 잘 살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고민해서 연기해줬다. 이 영화가 어찌 보면 글을 쓴다는 지용의 꿈이나 시나리오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영화의 키(Key) 맨이자 조커 캐릭터다. 가장 고마운 배우는 편의점 사장 전두환을 연기한 김수현 선배님이시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스토리를 맡았는데 중심을 잘 잡아줬다. 대사가 없는 상황에서도 ‘톤 앤 매너’로 장면을 장악하더라.

-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 전두환 사장이 편의점 안에서 목매 자살한 뒤 법원 집행관은 무표정한 얼굴로 물품에 딱지를 붙이고, 전에 일했던 알바생이 침입해 친구와 함께 물건을 훔치는 어수선한 상황이 내 정서에 맞다.(웃음) 밝고 화사한 영화 전반부는 예전에 내가 잘 해보지 않았고, 과연 할 수 있을까 했던 장면들이다.

- 전작들과 이번 ‘이우끝’의 차이점이 있다면.

▲ 과거 내 영화는 관객 입장에서 어렵고 찜찜했다. 내가 느꼈던 감정, 얘기하지 못하는 거에 대한 답답함을 영화를 통해 살풀이하는? 어느 순간부터 다른 걸 해보고 싶은 욕망이 생겨나 이번 작업에 도전했다. 유연해지고 싶었다. 관객들이 재미있고 쉽게 받아들이는 영화를 만들려 했다. 지난 5월 전주국제영화제 때 젊은 관객들이 흥미롭게 봐주더라. 속이 후련했다. 나 자신에 대한 가능성을 타진해 봤고, 역량을 확인해 본 셈이니까.

 

- 이른 나이에 영화에 입문한 계기가 궁금하다.

▲ 10대 청소년 시절부터 영화를 좋아했지만 감독보다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러다 시사주간지 한겨레21에 겸이라는 필명으로 주1회 기고를 했다. 자유주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재한 거다. 그런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글쓰는 생각을 접었다. 이미지와 사운드로 뭔가를 만들 수 있다는 게 글보다 더 감각적으로 다가왔고, 영화가 훨씬 재밌겠다고 판단했다. 단편영화를 시작하면서 감독에 대한 꿈을 품게 됐다.

- 당신에게 영화는 어떤 의미인가.

▲ 입으로 말하기 힘든 것들을 예술이란 포맷으로 말할 수 있는 통로? 10년 동안 영화작업을 하며 성장해왔다. 향후 10년이 어떻게 전개될진 잘 모르겠다. 고민을 계속 하게 된다. 과거의 맥락에서 할 수도, 아예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 제목 ‘이것이 우리의 끝이다’는 절망적으로 읽힌다.

▲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싶었다. ‘20대를 이렇게 보내면 절망적이다’와 ‘하지만 끝이 곧 시작이다’란. 절망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절망적이지 않게 재밌게 볼 수도 있으니까.

 

- 다음 영화 계획을 들려달라.

▲ 서울 영등포 지역 성매매 여성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등포 천일야화’(가제)를 편집하고 있다. 오는 9월 열리는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첫 상영될 예정이다. 지난해 영등포 지역 집창촌에 대한 경찰 단속에 반발해 성매매 여성들이 이주와 취업대책을 요구하며 시위할 때 촬영했다.

[취재후기] 서른의 감독은 새순처럼 푸르고 여려 보였다. 자그마한 체구에 뿔테안경을 쓴 모범생 외양이지만 범상치 않은 기량을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영화작가다. 알속의 병아리가 껍질을 깨트리고 나오기 위해 부리로 쪼듯, 그는 새로운 영화 물결을 만들기 위해 단단한 기성 시스템을 무섭게 쪼아대고 있다. 그의 실험이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해졌다.

goolis@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