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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리우] '2000호골 이천수-최다출전 기성용', 올림픽축구 숨은 진기록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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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리우] '2000호골 이천수-최다출전 기성용', 올림픽축구 숨은 진기록찾기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6.08.03 00: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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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다 득점도 이천수의 3골, 멕시코와는 10번 중 5번째 맞대결

[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한국 축구의 올림픽 첫 출전은 6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8년 런던에서 데뷔한 뒤 통산 10번째 본선 출전 고지를 밟게 됐다.

8회 연속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음으로써 연속 출전 부문 세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출전기회가 늘어나며 다양한 기록들도 함께 생겨났다.

대한축구협회는 2일 홈페이지를 통해 ‘알아두면 더 좋은 한국 축구 올림픽 참가 기록’을 소개했다.

올림픽 대표팀 역사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건 이천수다. 2000년 시드니에 이어 2004 아테네 올림픽에도 참가한 이천수는 8강전에서 파라과이를 상대로 골을 터뜨렸다. 이 골은 1908년 런던 올림픽에서 남자 축구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후 2000번째 골로 기록됐다. 2012 런던 올림픽까지 총 2163골이 나왔다.

▲ 이천수는 한국 올림픽 축구 역사에 가장 많이 이름을 올린 선수다. 그는 올림픽 축구 사상 2000호골의 주인공인 동시에 3골로 한국서 가장 많은 골을 기록했다. 사진은 2004 아테네 올림픽 조별리그 그리스전에 출전한 이천수(오른쪽). [사진=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의 최다 득점자도 이천수다. 그는 3골로 박주영(서울)과 함께 가장 많은 득점에 성공했다. 경기 출장에서는 7경기로 9경기에 나선 박주영보다 골의 순도는 더 높았다.

첫 번째 퇴장의 주인공도 다름 아닌 이천수였다. 이천수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조별리그 칠레전에서 상대 선수의 목을 걷어차 레드카드를 받는 불명예를 안았다. 한국은 본선에서 치른 30경기에서 딱 2번 레드카드를 받았는데, 또 다른 선수는 아테네 올림픽 조별리그 그리스전에서 퇴장당한 김치곤(울산)이었다.

최다 출전의 영예는 기성용(스완지 시티)과 박주영이 안았다. 둘은 2008 베이징, 2012 런던 올림픽에 나란히 출전하며 9경기에 나섰다. 출장 시간으로는 기성용(816분)이 박주영(732분)보다 많다.

멕시코와는 질긴 인연을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 멕시코와 C조에 함께 속한 한국은 올림픽 본선에서만 멕시코를 5번째 만난다. 50% 확률로 멕시코를 만난 셈이다. 역대 전적은 2승 2무로 한국의 우위다. 두 팀은 6번 맞대결을 펼친 이탈리아와 스페인 다음으로 많이 만났다.

2번 참가한 선수들도 눈에 띈다. 올림픽은 ‘23세 이하 출전’이라는 연령 제한과 4년에 한 번 열리는 특성으로 인해 한 번 나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어렵다는 올림픽 출전을 두 번이나 해낸 한국 선수는 무려 10명에 이른다. 대부분이 해당 연령으로 한 번, 2번째에는 와일드카드로 참가했지만 최태욱, 이천수, 기성용은 19세와 23세에 각각 한 번씩 참가해 올림픽 2회 출전을 이뤄냈다.

▲ 기성용(오른쪽)은 2008 베이징, 2012 런던 올림픽에 출전해 9경기에 나서 박주영과 함께 한국 선수 중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지고 있다. 출장 시간도 816분으로 가장 많다. [사진=스포츠Q DB]

최연소 참가 선수는 조진호(상주 상무 감독). 그는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첫 경기에 만 18세364일로 출전했다. ‘한국축구 대부’ 김용식은 1948년 런던 올림픽 첫 경기 당시 만 38세 8일로 한국 역대 최고령 참가자로 기록돼 있다. 세계 기록은 2012 런던 올림픽에 와일드카드해 한국과 8강전을 치른 라이언 긱스(영국)의 38세 8개월이다.

기분 좋은 기록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48 런던 올림픽 8강전에서 스웨덴에 12-0으로 참패한 것은 한국 축구 역사상 국제경기 최다 골차 패배 기록이다. 다행인 것은 올림픽 본선 사상 최다 실점은 아니라는 점. 1908 런던 올림픽에서 프랑스는 덴마크에 17-1로 졌고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러시아는 독일에 16-0으로 패했다.

가슴 아픈 역사도 있다.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선수로 유명했던 김용식은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본 대표로 선발돼 출전했다. 광복 이후 1948 런던 올림픽에는 한국의 주장으로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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